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10여년 전 국내 모 철강사에서 열린 행사에서다. “회장님이 입장하십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 멘트와 함께 전 직원들이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난다. 동시에 사기(社旗)를 든 근로자들의 제식에 맞춰 전 직원들이 회장을 향한 거수경례와 함께 우렁찬 구호를 내지른다. “안전!”
일부 동료기자들이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된 나머지 엉거주춤 일어난다. 얼마 못 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다. 이후 이 에피소드를 갖고 혹자는 군시절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언급했으나, 필자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만큼 해당기업의 안전경영이 사내문화로 정착됐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에도 현장 안전사고는 국내 산업계의 골치 아픈 화두였다. 건설현장과 조선소에서는 근로자들이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 제철소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거나 근로자들이 쇳물에 빠졌다. 그때마다 해당사들은 대국민사과에 준하는 사과와 현재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안전대책 제시를 병행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화두는 하도급 문제였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현장 피해자의 대다수는 하청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전을 경례구호로 내세웠던 철강사마저 필자의 믿음을 배신(?)했다. 해당 행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철소 내 대형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측은 사고해명 과정에서 피해현장이 원청 담당이 아닌 하청 담당지역이라고 했다. 아파트 한 세대에서만 불이 나도 모든 동주민이 대피하는 법이다. 위험도 높은 시설들이 붙어있다시피 한 철강사의 해명치고는 너무 궁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사업장은 리스크가 큰 업무는 전문성이 요구되거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명목으로 대부분 외주에 맡기는 관행 아닌 관행이 뿌리깊다. 건설이나 조선업 등 업종 특성상 안전사고가 잦은 다른 업군도 마찬가지다. 업종별로 하청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관련 노하우가 없다’ ‘원청이 감독할 작업장이 너무 넓다’ ‘인력이 없다’ 등등 다양하다. 사실 전부 틀린 것도 아니니 할 말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범위 넓힐 필요 없이 최근 건설업종에서만 발생한 안전사고 사례만 열거한다. 지난 4월 11일 경기도 구리시 지식산업센터 및 22일 서울 성북구 도시형생활주택 신축 공사현장, 27일 인천 서구 검단지구 복합시설 신축 공사현장에서는 모두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자들 모두 하청 소속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