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폭풍 예상돼… 임대 공급·금융 확대 필요"
매일일보 = 이소현 기자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면적인 임대차 시장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거세다. 원 장관이 언급한 전세금 금융기관 예치제를 도입하면, 세입자 보호 측면은 크겠지만 서민들의 주거사다리가 끊길 수도 있어서다.
이 경우 전세제도 사멸이 불가피한 만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온다.
17일 원 장관의 발언대로 전세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제도가 실행될 경우, 그 정도와 강도에 따라 전세제도의 운명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민간 전세시장은 위축될 공산이 크다. 예금금리 등을 적절히 설정하면 양질의 전세는 시장에 남겠지만, 그렇지 못한 전세 매물들은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 또 전세금을 통해 매매대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될 경우 종전과 같은 갭투자가 불가능해진다. 신규 입주 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단기적으로는 전세시장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매매도 따로 떼어두고 볼 수 없는 문제다. 매매와 전세·월세로 삼분된 시장이 매매·월세로 개편돼 버리면 시장 레버리지도 요동치게 된다. 전세를 받아 분양잔금을 내려던 수분양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 있고, 근로소득과 집값 격차가 대폭 벌어진 상황에서 '내 집 마련'이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전세제 폐지에는 반대하지만, 포괄적인 시각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를 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정부대책 자체에는 동의한다"며 "에스크로식으로 전세금을 금융권에 예치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거기에 금융 상품을 개발해 수익을 얻고 이자를 배정해 준다는 식으로 간다면 그쪽으로 일부 수요가 움직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와 동시에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을 의무화한다면, 현재 이미 보증요건이 강화된 상황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악성 전세는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여 연구원은 "다만 급격히 제도 개선을 하게 되면 재산권 침해와 같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며 "이런 부분에서는 세심하게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발은 당연할 것이고, 금융제도에도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할 것이다"며 "지금으로선 정부가 어떤 정도까지 염두에 하고 발언한 것인지는 알기 힘들지만, 국내 주택 시장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전세금을 레버리지 삼아 주택을 마련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그 같은 시장이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더라도 월급 받아 10억원대 서울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며 "전세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한다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풀어주는 등 매매 시장의 금융규제를 완화해야 할 것이다"고도 했다.
박상혁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대상 주택 매매 중 갭투자(임대보증금 승계) 비율은 지난해 전체의 31.7%로 집계되는 등 3년 연속 30%대를 기록했다.
전세제도가 위축되면 '연(年)세·주(週)세' 등 다양한 계약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적은 보증금을 내는 대신 6·11개월치 월세를 미리 내거나, 주 단위로 숙박비를 지불하는 등 단기 계약을 맺는 식이다. 이 경우 아파트 시장 또한 시세차익 중심에서 월세를 통해 수익을 내는 수익형 부동산 시장으로 재편될 수 있다. 다만 세입자의 경우 비용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가 끊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공공임대 주택 공급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