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최재원 기자 | 전세사기 수법이 갈수록 진화하면서 광범위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전세계약 유형이 가지각색인 만큼 사기 수법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8일 국토교통부가 의뢰한 수사기관 조사 유형에 따르면 서울에 빌라를 신축한 건축주 A씨는 분양·컨설팅업자 B와 높은 보증금으로 전세계약 시 일정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공모했다.
분양‧컨설팅업자 B는 이사지원금을 주겠다며 임차인을 유인해 높은 보증금으로 건축주 A씨와 전세계약을 체결하게 했고, 이후 ‘바지 임대인’ C가 건물을 통째로 매수토록 해 임대차 계약 종료 시 보증금을 반환하기 곤란하게 해 임차인에게 피해를 입혔다.
실제로 임대인 C가 같은 날 한꺼번에 한 건물의 다른 호실 15채를 매수하거나, 멀리 떨어진 주소지의 주택 8채를 매수하는 등의 이상 거래가 부동산 거래신고 데이터에서 다수 발견됐다.
또한 50대 임대사업자 D씨는 공인중개사 등을 모집책으로 매매가격보다 전세보증금이 더 높은 ‘깡통전세’ 오피스텔을 찾아 총 29채를 자기자본 없이 매수했다.
이 과정에서 오피스텔 29채 매수대금을 보증금으로 조달하기 위해 전세계약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임대사업자 D가 매수한 오피스텔 모두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아 매수할 때마다 오히려 차액을 현금으로 지급받았다. 이 중 일부는 거래를 성사시킨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보수를 초과하는 수준의 높은 리베이트를 지급했다.
이에 전세계약 종료 시점에는 계약 당시 전세가로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게 되며 다수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부동산컨설팅사인 E중개사무소는 매물을 부동산온라인 플랫폼에 올린 30대 F씨에게 접근해 매물을 팔아주는 조건으로 매도 희망가격인 1억7500만원보다 높은 가격인 2억원으로 ‘업계약서’를 쓸 것을 제안했다. E중개사무소는 임차인 G씨를 유인해 업계약서상 동일 금액인 2억원의 보증금으로 전세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전세계약 체결 직후 E중개사무소는 매수인 H를 소개하며 실제로 업계약서를 쓰게 하고, 임차인 G씨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 2억원으로 매매대금 1억7500만원을 치르고, 업계약서상 금액과 실제 매매대금 차이인 2500만원을 E중개사무소 일당이 수수료로 나눠가졌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방송작가 H씨 일당은 깡통전세 오피스텔을 월세 물건으로 속이는 등의 수법으로 지난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64명으로부터 327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 일당은 대전에서 법인을 세운 뒤 수도권 지역에서 갭투자를 통해 전세 계약된 오피스텔과 빌라 432채를 무자본으로 사들였다. 이후 이를 월세 계약된 매물인 것처럼 속인 뒤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금 폭탄 때문에 처분하려고 한다”며 시중가의 절반 가격으로 팔아넘겼다.
뒤늦게 전세권이 설정된 것을 알게 된 피해자들이 항의하자 이들은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안 해서 말소가 되지 않은 것이다” “사택 관리 회사에서 전세를 줬는지도 모르겠다” “세입자가 보증보험을 해지하지 않아 그렇다” 등의 말로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아울러 ‘임대인은 세입자를 찾아가선 안 된다’는 규칙까지 만들었다.
이처럼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상황이 다양한 만큼 대책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피해자가 100명이라면 사례 1부터 사례 100까지 전부 면담을 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일괄적인 대책 대신 심층 면담과 권리 분석을 통해 피해 사례별로 어떤 지원을 해주고 맞춤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세 피해 유형이 워낙 다양하기에 무 자르듯 피해자를 구분하기 쉽지 않고, 이에 따라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생길 수 있다”며 “경계부에 있는 피해자 인정 여부를 놓고 토론을 많이 벌여야 할 텐데, 여기에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