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소현 기자 | 공공기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오는 20일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윤석열 정부가 공기업 방만경영 퇴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 자칫 삐끗했다가는 기관장의 거취마저 불안해질 판이다. 윤 정부는 국민 혈세를 투입해 운영되는 공공기관들이 재무구조 개선에는 소홀히 했다면서 이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부채는 2018년 500조원이던 것이 2022년 670조원으로 급증했다. 공기업 부채는 결국 정부가 부담한다. 사실상 정부 부채와 다름 없는 우리 경제의 숨겨진 뇌관인 셈이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은 분명한 사회적 문제다. 억대 연봉을 받으며 성과급 파티를 벌이고, 해외 출장을 일삼으며 호화 사옥을 지은 사례들이 연이어 보도되며 국민의 공분을 샀다. 하지만 이같은 현실이 공공기관만의 '잔치'였을까. 윤석열 정부는 1월 미분양 문제가 부상하자 공공기관이 매입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주택공기업이 서울의 미분양 주택을 비싼 값에 사들이자 '혈세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는 뒤늦게 벌언을 철회하고 공공이 매입임대를 통해 미분양을 사들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전세사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공기업은 또 다시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임대 주택은 공공기관에는 재무 부담이다. 분양과 달리 수익을 낼 수 없는 사업일 뿐더러, 임대 보증금은 회계상 부채로 인식될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기간 실적을 늘려 구멍을 채우기도 힘들다. 일단 택지개발 사이클이 끝나고 다음 개발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부채는 늘고 수익은 줄어들게 된다. 정부 정책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도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박근혜 정권 이후 역대 정부는 꾸준히 전세보증금 제도를 확대했지만, 이를 위한 내부의 관리 감독과 통제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전세사고가 급증하고 집주인의 빚을 공공이 대신 갚아주는 처지가 되면서 공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도 문제이지만, 대책 없이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제대로 된 타당성 검증 없이 포퓰리즘식으로 공공기관에 무리한 정책을 떠넘기고, 공기기관은 공공기관대로 정부가 시킨 업무만 추진하며 출자받은 돈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한다. 공공기관과 정부 모두에게서 이중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 것이다. 재무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철저한 정책 검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공공기관 혁신은 '자산을 팔아 당장의 부채만 메꾸자'는 주먹구구식의 반쪽 짜리 단기 대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