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전수영·이한듬·정두리 기자] 글로벌 경제 위기가 여전히 지속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기업 옥죄기가 계속되고 있어 재계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너무나 압박하면서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효성그룹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재계 순위 26위인 효성은 지난 1966년 동양나이론을 모태로 성장한 기업이다.1969년 국내 최초로 154kV 고압변압기를 개발했으며 1973년 (주)토프론, 동양폴리에스터(주), 동양염공을 설립하면서 사세를 키웠다.1979년 안양공장에서 PET병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1982년에는 인도에 타이어코드 제조기술을 처음으로 수출하며 우리나라 산업수출에 한 축을 담당했다. 섬유와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건설, IT, 중공업 분야까지 진출한 효성은 꾸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재계에서는 효성에 대해 기술개발(R&D)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며 국내 섬유 및 소재 분야를 이끌어온 기업으로 소리를 내기보다는 내실에 충실한 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최근 효성은 나일론에 버금가는 경제력과 파급력을 지닌 ‘폴리케톤’ 개발에 성공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부품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상운 효성 부회장은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폴리케톤 개발은 50여년간 쌓아온 효성의 화학 부문 연구개발과 생산 노하우로 이룬 쾌거”라며 “유해가스를 원료로 우리 산업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일석이조의 소재라는 점에서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제품”이라고 밝혔다.효성은 오는 2020년까지 기존 소재 대체에 따른 직접적인 부가가치 창출만 1조원, 관련 사업까지 포함할 경우 최소 10조원에 이르는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효성이 폴리케톤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석래 회장의 과감하면서도 투자 결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조 회장은 2007년부터 5년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이끌며 금융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으며 정부와 재계를 중재하며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하지만 최근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휩싸이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이 때문에 고령인 조 회장은 지난달 말에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가 보름 만에 퇴원했다. 이후 자택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SK그룹도 효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450억원대 횡령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 또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다.최 부회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유죄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됐다.최 회장의 부재로 인해 SK는 올 한 해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핵심 사업을 진행하면서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지만 총수의 부재로 인해 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문제는 대법원에서도 상고심의 결정을 수용할 경우 SK는 향후 3년여 정도를 최 회장의 부재 속에 격변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한화그룹 역시 김승연 회장의 부재로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김 회장은 과감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큰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8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재건사업을 수주한 쾌거 뒤에는 김 회장이 이라크 정부와 지속적으로 교감을 나눴기에 가능했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하지만 2차 수주는 꿈도 못 꾸고 있다. 김 회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돼 경영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제2의 중동 붐을 예상하고 있던 한국 건설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침체된 국내 시장을 타결할 수 있는 호기였지만 자칫 수포로 돌아갈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CJ그룹도 현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횡령·배임과 조세포탈 및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된 이재현 회장은 8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으며 치료를 위해 법원에 구속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의료계에서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을 경우 최소 1년 정도의 요양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자칫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생명도 위험할 수 있어 정신적 안정과 함께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CJ가 해외사업을 확대키로 결정하면서 이 회장의 추진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 회장의 부재로 인해 현재는 대규모의 사업을 계획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내년도 사업계획도 보수적으로 짤 수밖에 없어 경쟁자들과의 승부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일각에서는 정부의 기업 흔들기가 도를 지나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재계 관계자는 “총수가 부재이거나 검찰 수사를 받는 기업의 경우 아무래도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내년도 사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에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움에 따라 내년 실적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다른 재계 관계자도 “정권이 바뀌거나 세수가 부족하면 정부는 기업 총수들을 소환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 기업들을 압박해왔다. 이 때문에 경영 공백이 생기며 기업이 존폐 위기에 몰리는 경우도 있다”며 “기업이 잘못한 부분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겠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이 흔들릴 경우 국민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런 부분까지 정부가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