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지난 7월 13일부터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탓에, 특히 주말을 전후한 사흘 새 400㎜를 넘는 기록적인 ‘극한호우’와 ‘집중호우’가 번갈은 ‘물 폭탄’이 충청과 경북 그리고 전북 등을 강타하면서 중부 지방이 초토화돼 전국 곳곳에서 산사태, 지하차도 침수 등의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망·실종자가 49명을 넘어서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전국 각지에서 실종자 수색 등이 진행 중인데,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 안타까움을 더한다. 강물이 넘쳐 지하차도가 잠기고 산이 무너져 내리며 죽음의 공포가 국민들을 들이덮칠 때 국가 재난대응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7월 17일 오전 6시 발표한 ‘호우 대처상황 보고’에 따르면 이번 호우로 사망자가 17일 오전 6시 기준 39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으나 중대본 집계 이후 오송 지하차도에서 시신 1구가 더 발견되면서 현재까지 충북 사망자는 16명(오송 13명)이다. 따라서 7월 17일 오전 9시 현재 전국의 사망자는 40명(경북 19명·충북 16명·충남 4명·세종 1명)으로 잠정 집계됐고, 실종자는 9명(경북 8명, 부산 1명)이며 부상자도 34명이나 발생했다. 주택침수는 82동으로, 이 중 주택이 모두 파괴됐거나 반파된 경우만 40동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우로 집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한 인원은 14개 시·도 111개 시·군·구 6,255세대 10,570명에 달한다. 기록적인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 지역에서만 19명이 숨지고 8명이나 실종됐다. 수해로 치면 12년 만에 최대 규모의 인명 피해다. 기후변화로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면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천재지변’도 갈수록 더 극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인위적인 사전 대책 또한 한계가 있겠지만 이번 참사는 어쩔 수 없이 알고도 당하는 후진국형 재난이라기보다는 후진국형 공공재난이란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비가 내렸다. 그렇다고 막지 못할 ‘천재지변’ 까지는 아니었다. 과욕이 부른 민간 영역에서의 의도적인 인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이미 지난해 8월 중부 지방을 강타했던 이례적인 집중호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한 바 있어 학습효과가 크고, 정부 역시 이를 고려해 ‘철저히’ 사전에 대비해 온 데다, 특히 올여름은 평년보다 덥고 ‘엘니뇨’ 영향으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집중호우까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기상청은 지난 5월 23일 발표한 ‘3개월 전망’을 통해 6월부터 8월까지의 기온이 높고 강수확율이 높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7월 4일(현지 시각) 세계기상기구(WMO)도 동태평양 감시구역의 수온이 1℃ 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어, 7월과 9월 사이에 엘니뇨(El Niño)가 발달할 확률이 90%에 달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 5월 예측치보다 10% 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적도 지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평년 대비 0.5도 높은 상황이 5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말한다. 엘리뇨가 발달하면 우리나라는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올해 역시 비슷한 형태의 ‘극한호우'가 일찍부터 예고된 만큼 정부는 올여름 많은 비가 온다는 사실을 인식·통찰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했는데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 재난관리 허점 지적이 또다시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산사태 피해가 컸던 경북에서만 사망(19명) 및 실종자(8명)가 무려 27명이나 나왔다. 경상북도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망 또는 실종자 중 66.7%인 16명이나 산사태에 직접 휩쓸리거나 집이 매몰·침수돼 변을 당했다. ‘극한호우’라고 할 정도로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빗물이 땅속으로 들어갈 여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산사태 등 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경상북도는 7월 15일 오전까지 도지사 명의의 특별지시사항을 4차례 내려보내 지자체장 중심의 상황 관리를 요구했지만 이러한 조치가 ‘권고’ 수준에만 그치다 보니 대규모 인명 피해를 막지는 못했다. 경상북도가 15일 오후 9시 도내 전 지역에 대피명령을 내렸는데, 이미 예천 등 곳곳에서 사망·실종 피해가 발생한 뒤였다고 한다. 사전에 충분한 점검과 대피 안내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산림보호법」은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를 계기로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마다 산림 당국의 기초조사와 자체 현장조사 등을 기준으로 산사태 위험이 큰 곳을 집중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경북 예천군의 경우 일부 지역은 군이 지정한 산사태 취약 지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기후 위기로 재해 규모와 양태가 달라지고 있는 만큼 차제에 위험 예측과 재난 대비 상이한 매뉴얼도 상황 변화에 맞게 수시로 개선해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가 침수되면서 7월 17일 오전 9시 현재 13명이 숨졌다. 이번 사고는 직선거리로 600m 떨어진 미호강의 범람으로 제방이 무너져 지하차도가 물에 잠기면서 시내버스 등 차량 15대가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지하차도 침수로 시민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또다시 반복되었다니 안타깝고 황망한 일이다. 특히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인근 하천의 범람이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안이한 대처와 행정관청의 대응 부재로 발생한 전형적인 ‘인재지변’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하천 범람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사 현장의 제방 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대홍수 심각 단계가 발령됐는데도 위험 도로를 통제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재난위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관할 타령’만 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노정되었기 때문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