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한국 경제의 주체인 가계와 기업, 정부가 모두 늘어나는 부채에 재정 건전성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날로 커지는 경고음에도 가계 빚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23일 한국은행 금융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6월 말 예금은행의 가계 대출 잔액은 1,062조 3,000억 원으로 전달 5월에 비해 5조 9,000억 원 증가했다.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규모로 증가 폭은 2021년 8월 6조 4,000억 원 이후 무려 21개월 만에 최대다. 지난 7월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7월 20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 대출 잔액도 678조 5,700억 원으로 6월 말보다 3,246억 원 늘어났다. 이들 은행의 가계 대출 잔액은 지난해 1월부터 16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지만, 지난 5월 증가세로 전환된 뒤 3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세 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가계 대출을 주도하고 있다. 6월 말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814조 8,000억 원으로 6월에만 7조 원이나 급등했는데 4월 증가분 2조 8,000억 원과 5월 증가분 4조 2,000억 원을 합한 규모에 달한다. 2020년 7조 8,000억 원 증가에 이어 무려 4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5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512조 3,397억 원으로 20일 동안 9,389억 원이나 불어났다. 보통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현재는 상황이 정반대다. 주춤하던 시장 금리가 6월 이후 다시 오르기 시작했는데도 주택 담보 대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최근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12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6월 부동산매매량은 3,708건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다. 서울 아파트 월별 매매량은 지난해 10월 559건으로 바닥을 찍은 뒤 7개월째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3,189건으로 2021년 8월 4,065건 이후 처음으로 3,000건을 돌파한 뒤 3개월 연속 3,000건대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서는 7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주(0.04%)보다 0.07%나 올랐다. 2021년 12월 셋째 주(0.07%) 이후 가장 높다. 전국 아파트 가격은 0.02% 올라 지난해 1월 이후 1년 6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가계 주택 대출수요지수는 2분기 14에서 3분기 19로, 가계 일반 대출수요지수는 0에서 14로 각각 상승했다. 하반기 주택매매 거래량과 분양·입주 물량 증가로 주택 관련 대출 수요가 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해석이다. 부동산 경기 회복과 맞물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나 ‘빚투(빚내서 투자)’에 다시 불이 붙으면 이미 위험 수위에 오른 가계부채가 통제 불가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 문제는 가계의 신용위험지수는 33에서 36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가계 대출금리가 2021년 말 3.01%에서 5월 말 5.06%까지 오른 만큼 이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가계 대출 연체율은 올해 3월 말 기준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각각 0.3%, 1.71%였다. 은행권 연체율은 지난 2019년 11월 0.3% 이후 3년 6개월 만에, 비은행권 연체율은 2020년 11월 1.72%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자영업자 취약 차주의 올해 1분기 전체 금융기관 연체율은 1%로 전 분기 0.65%보다 0.35%포인트 상승했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민간 소비에 치명타를 입혀 경기 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3%인데 이 중 민간 소비 기여도가 0.3%포인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수출이 위축된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기댈 유일한 버팀목이 민간 소비라는 얘기다. 또 가계부채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 ‘부채 폭탄’이 된다면 연쇄 부실 확대로 금융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 대출과 함께 오는 9월 상환유예가 끝나는 자영업자 채무도 시한폭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33조 7,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지난해 3분기 1,000조 원을 넘어선 이후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 늘어났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50.9% 급증했으며 1인당 대출 규모도 3억 3,000만 원으로, 비자영업자 대비 3.7배 많다. 무엇보다도 자영업자 대출 잔액 가운데 71.3%인 737조 5천억 원은 ‘다중채무 자영업자’ 대출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가계 신용)가 80%를 넘으면 1년 뒤 경제 성장률이 최대 3%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와 함께 경기가 역성장하는 경기침체 발생 가능성도 1~3년 시차를 두고 커지는 것으로 지난 4월 28일 한국은행 학술지 ‘BOK이슈노트’에 가계 신용 누증 리스크를 분석한 내용을 실었다. 지난 7월 24일 한국은행이 발간한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 및 평가’에 따르면 2020~2022년 가계의 초과저축 규모는 101조~129조 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이 같은 초과저축 규모는 2022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7~6.0%에 해당한다. 명목 민간소비 대비로는 9.7~12.4%를 차지한다. 초과저축은 보통 소비에 사용되거나 부채 상환에 쓰인다. 코로나19 기간 초과저축이 쌓였던 미국이나 유로 지역에서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흐름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9년 95%에서 지난해 105%로 오히려 높아졌다. 문제는 초과저축을 주로 예금, 주식 등 유동성 높은 금융자산 형태로 보유하면서 가계가 빚을 갚는 대신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을 위한 대기 자금 형태로 초과저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데, 보다 심각성을 더하는 것은 초과저축이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빠르게 유입될 복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가계의 초과저축은 대출과 함께 주택시장에 재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주택 가격 상승, 가계 디레버리징(Deleveraging │ 부채 감축) 지연 등으로 이어지게 되면 금융안정에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GDP의 5%나 되는 막대한 이 돈이 소비 확대나 부채 상환에 쓰이지 않고 주택시장 불안을 키우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야말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국제금융협회의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34개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1위이며, 국제결제은행이 분석한 지난해 국내 가계 부문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13.6%로 세계 주요 17개국 중 호주(14.7%)에 이어 2위인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신용(가계대출 + 카드빚)은 1,853조 9,000억 원에 달하며, 전세보증금은 1,058조 3,000억 원 정도로 알려진다. 게다가 130조 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10년 전보다 14배 폭증한 해외 부동산 펀드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가계부채 축소가 지연되면 금융안정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다. 이대로 가다가 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의 뇌관이 폭발하는 것을 막기는 사실상 어렵다. ‘부채 폭탄’이 터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부채를 제어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서둘러 ‘안전핀’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통제해야만 한다. 가계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정교한 금리정책을 펼치는 것은 물론, 취약·연체 차주의 채무 조정 활성화를 통한 금융 재기를 위한 지원 강화 등 선제적 대책으로 가계부채를 더 치밀하게 관리하는 것이 금융 당국에 당면한 시급한 현안 과제다. 이와 함께 ‘영끌’이나‘빚투’ 심리를 잠재울 수 있도록 부동산 시장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만 할 것이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