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민주 기자 | 2020~2022년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동안 ‘밀키트’ 시장은 전성시대를 맞았다.
HMR(가정용간편식)은 코로나 전부터 1인 가구 증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시장 규모를 키워왔다. 손질된 소용량 식자재를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가정간편식이 대형마트 대용량 식자재 구매‧관리가 부담스러운 1인 가구의 니즈와 맞닿은 영향이다. 코로나 기간 사회적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외출, 외식, 모임이 불가해지며 밀키트 시장은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폐업한 자영업자, 직장이 망한 실직자 등 코로나발(發) 재앙에 허덕이던 사람들은 앞 다퉈 살길을 찾아 ‘밀키트 매장 창업 붐’에 가세했다. 코로나로 비어진 각 상가들의 공실들을 밀키트 판매점이 모두 매꿔가는 모습이었다.
일각에선 전국적 대유행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나는 모양새에 ‘제2의 대만 카스테라’로 전락할지 모른단 우려도 나왔지만, 창업자들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생활문화가 바뀐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의 시장 판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현재 밀키트 열풍은 지속되고 있지만, 그 많던 밀키트 매장들은 다 사라져 가고 있다. 140만명의 회원수를 갖춘 국내 최대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밀키트 매장 양도 글이 연일 늘어가고 있다. 올 상반기(지난 1~6월) 게시된 관련 글은 총 61건으로 지난해 동기 25건 대비 144% 증가했다. 하루라도 빨리 장사를 정리하는 게 이득이란 게시글과 댓글도 넘쳐난다.
밀키트는 정말 여느 ‘반짝 인기’에 그치는 외식 프랜차이즈에 불과했던 걸까. 자영업자들의 곡소리와 별개로 밀키트 전체 시장은 끝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통계를 살펴보면, 국내 가정간편식 시장은 2020년 4조원을 돌파해, 지난해엔 5조원 규모를 넘어섰다.
밀키트 매장이 후퇴한 자리는 대기업 산하 HMR전문 브랜드들이 꿰찼다. 경영학, 소비자심리학, 유통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HMR사업에서 선방하기 위한 대표 조건은 △외식·유통·제조업체의 원활한 협업 △불어난 수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량생산능력 △24시간‧전국 단위를 커버할 수 있는 유통망 등이다. 소자본 자영업자 위주의 밀키트 매장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단 뜻이기도 하다.
식품 대기업들은 HMR 시장에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거대 유통 인프라와 식자재 조달망, R&D 및 마케팅 역량, 거대 자본 등을 기반으로 빠르게 영향력을 확장했다. 유명맛집과 협업해 RMR(레스토랑 간편식)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헬스플레저 열풍에 발맞춘 건강식 라인업,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자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상품 카테고리 다각화 등도 두드러진다.
자영업자들이 규모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리다. 하지만 솟아날 구멍은 분명 존재한다. 외식업의 역사를 톺아보면 대기업도 결국 발을 들였다 투항한 분야가 있다. 대형 세력도 결국 못 이겨내는 포인트가 있는 뜻이다.
한 대형 식품제조기업의 관계자와 식사 자리에서 나눴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대기업은 생산 공정 단순화 및 비용 절감 등을 위해 품질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가문 대대로 비법을 전수해 온 장인의 가게, 마니아층‧콘셉트가 뚜렷한 분야, 성실하게 고객을 유치해 온 동네 골목 맛집 등 ‘고유의 색’을 가진 곳들은 그들만의 경쟁력으로 끝까지 살아남더라. 이들에게 우린 고개를 숙이고 협력을 바란다.”
도장 찍어내듯 쏟아졌던 밀키트 창업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향후 수요가 지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시장을 대형 기업들의 독무대로 뺏기지 않도록, 각 업자들의 경쟁력 강구 및 제고와 상생 방안 마련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