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상품, 명품 수요 동시 증가하는 모순된 소비패턴 고착
새 소비 트랜드에 못 쫓아가는 소상공인, 경쟁력 약화 우려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엔데믹과 고물가 장기화 등 다양한 대내외적 변수로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극과 극' 무드로 전환됐다. 특히 물가 상승으로 소비심리가 악화돼 고객 확보를 위한 유통업계의 체질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명절을 앞두고 고가·저가별 양극화가 진행된 소비시장에 맞춰 새로운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은 대명절 추석을 맞아 재활용 포장지를 활용해 가격 거품을 줄이고, 제품에 집중한 ‘가성비’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편의점 등지에선 가격과 실용성을 모두 잡은 ‘가성비 상품’이 인기다. 편의점 GS25가 지난 2월 출시한 ‘혜자로운집밥도시락’의 경우 7종의 도시락 판매량이 출시 6개월여 만에 1000만개를 돌파했다. 해당 도시락은 일명 ‘김혜자 도시락’으로 불리며 가성비로 잘 알려진 상품으로, 식비 절약을 위한 학생 및 직장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가성비 시장이 각광 받고 있지만. 정작 고가-명품 시장 위축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실제 명품 가방 수입액이 최근 4년 사이 200% 넘게 늘어난 데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증가 추세기 때문이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이 관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물품 신고 가격이 200만원을 초과하는 가방 수입액은 2018년 2211억원에서 지난해 7918억원으로 258.1% 늘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초 ‘국내 5대 소비분화 현상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경제 및 사회의 변화,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조된 관심, 고물가 및 저성장 기조 장기화 우려, 개인소비성향의 변화 등으로 가계를 중심으로 국내 민간부문의 소비 패턴이 점차 양극화 내지는 분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고물가와 경기둔화로 실질 소득이 감소한 소비자는 지출 절감을 위해 필요한 만큼만 소용량·소포장으로 구매하는 소비 전략과 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구입하는 공동구매와 중고제품 구매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절약한 소비를 바탕으로 확보한 자금을 명품이나 초고가의 서비스 이용을 위해 아낌없이 지출하는 소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향후에도 1인 가구의 증가와 명품에 대한 인식 전환으로 비용 절감을 위한 소량의 제품구매 패턴과 초고가 소비지출 형태는 양립할 것으로 보인다.
또 국내 민간부문의 해외소비(외수형 소비)는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큰 반면 국내 소비(내수형 소비)는 둔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 이는 엔데믹 도래 이후 휴가철에 국내 여행보다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어 현실화 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조폐공사의 여권 발급량은 367만권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3만권)보다 3.5배 급증했다.
또 정부는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 올 추석 연휴를 6일까지 늘려 명절 장기 연휴 인한 ‘내수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시장 현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휴가가 길어질수록 해외여행을 떠나는 국민들이 많아지는 만큼, 내수 시장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런 소비 트렌드 변화는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계에게도 체질 개선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가계 소비 여력 약화로 외식을 줄이고 집밥을 찾는 수요가 증가해, 자영업주들은 경영 전략 선회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극한의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체리슈머’가 대세가 됐는데, 이들은 보통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을 구매한다. 영세 규모의 자영업자들은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개발할 역량이 부족하므로 결국 플랫폼사의 입김에 휘둘리는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 중구의 치킨집 사장은 “엔데믹으로 오프라인 고객은 늘었지만, 이들은 온라인으로 식당을 알아보고, 플랫폼을 활용한 배달 주문에 익숙해졌다. 오마카세 등으로 프리미엄 외식을 내세운 식당은 이런 환경에서 주목받을 수 있겠지만, 길에 지나가는 손님을 주로 받았던 식당들은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