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 계기 '차출론' 재점화
野, 친명계 중심 '3선 연임 초과 금지' 주장 제기
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쏘아 올린 '험지 출마론' 여파가 정치권에 확산하고 있다. '미니 총선'이라고 평가받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완패한 이후 쇄신을 앞둔 국민의힘에서는 '중진 차출론'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친명(친이재명)계 등을 중심으로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금지' 등 의견이 부상하고 있다. 여야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중진 험지 출마론'을 놓고 셈법이 분주한 모습이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에서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큰 격차로 참패하면서 하 의원발(發) '중진 차출론'이 재점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 의원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에서 서울 지역에 출마할 것을 발표했다. 김기현 대표는 하 의원의 서울 출마 선언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8일 강서구장장 보선 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나 "하 의원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며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서울 쪽에서 당이 지정하는 곳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당내에서 제기됐던 '수도권 위기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당 지도부가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는 이번 보선 패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총선 전초전으로 여겨졌던 이번 선거에서 대패하면서 당 일각에서 제기돼왔던 '수도권 위기론'을 넘어 '수도권 비상론'이 현실화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윤상현·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유승민 전 의원 등이 꾸준히 수도권 위기론을 주장했지만, 당시 여당 지도부는 "배를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승선을 못 한다"며 공천 배제 가능성까지 시사한 바 있다. '수도권 위기론'으로 인한 당내 혼란을 차단하고, 자칫 흔들릴 수 있는 수도권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 의원이 서울 출마와 관련해 사실상 당의 제안을 수용한 것을 인정하면서 당내 중진들의 험지 출마론이 본격 궤도에 올랐다. 당장 지도부에서는 중진들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당내에서는 중진의 험지 출마가 총선 승리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21대 총선에서 험지에 출마했던 이혜훈·이종구 전 국회의원 등은 모두 야당에 패배한 바 있다.
민주당에서는 친명계를 비롯해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서 '동일 지역구 3선 연임 초과 금지' 주장 등이 제기되고 있다. 친명계 원외 모임인 '더민주혁신회의'는 최근 홍익표 원내대표 당선 직후 총선 승리를 공천 혁신을 명분으로 '3선 이상의 중진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7월에도 '현역 50% 물갈이', '3선 이상 다선 4분의 3 이상 물갈이'를 주장한 바 있다. 재선 김두관 의원도 지난 10일 하 의원의 서울 출마에 대해 국민이 '혁신'으로 바라볼 것이라면서 "우리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혁신 경쟁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 동일 지역구 3연임 이상 의원들은 5선 이상민·설훈, 3선 이원욱·이개호 등이 있다. 이 밖에 조정식·안민석·정성호·서영교·박홍근 등 친명계 의원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로 계파 간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중진 험지 출마론'이 대두되면서 친명계가 비명계를 축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비명계에서는 친명계 의원 중 다선 의원들이 먼저 험지 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달 12~13일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 절반 이상이 자신의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 교체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임 지역구 국회의원의 재선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26.9%에 불과했다(오차 범위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