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전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되는 뮤리얼 스파크의 중단편선 <운전석의 여자>가 새로 출간됐다. <운전석의 여자>는 뮤리얼 스파크가 꼽은 자신의 최고작으로, 11편의 중단편엔 특유의 익살 섞인 시니컬함으로 포착한 여성과 삶에 대한 서늘한 아이러니가 담겼다.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운전석의 여자' 주인공 리제는 까탈스럽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생각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여성이다. 쇼핑 중 점원에게 느닷없이 화를 내고, 상사 앞에서 발작적인 웃음을 터트리고, 화려한 옷차림으로 있지도 않은 남자친구를 찾아다니는 리제는 그 어떤 해석도 거부한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반복하는 리제와 마주친 남자들은 겁을 먹고 시선을 피하거나, 폭력으로 그녀를 응징하려는 양분화된 태도를 보인다.
주변의 비웃음, 남성들의 폭력적 단죄 속에서 리제는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부유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리제의 행적과 자신을 죽이라는 그녀의 최후 요청이 정합성을 획득하는 이유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욕망함으로써 자신을 거부하는 세계에 저항한 것이다.
<하퍼와 윌튼>, <핑커튼 양의 대재앙>은 스파크 특유의 유머와 재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각기 여성 참정권 운동의 시대와 내부 갈등, 남자의 말과 여자의 말이 서로 다른 무게를 갖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검은 선글라스>, <포토벨로 로드>는 규명되지 않은 폭력에 관한 비밀을 알고 있는 두 여성 주인공이 작은 균열을 만들어내는 상황을 그린다. <이교의 유대 여인>, <오르몰루 시계>는 ‘여성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스파크의 문학적 응답이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운전기사 없는 111년>은 거짓 자서전에 실린 가족사진을 소재로 삶에 깃든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스파크의 여성 인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전형성을 뒤집는 그녀의 작품은 독자에게 말끔히 해석되지 않는 잔상을 남겨 그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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