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사실상 지상전으로 격화할 조짐을 보이며 세계 경제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유가 급등에 따른 ‘오일쇼크’가 고금리 장기화와 맞물려 1970년대와 같은 경기 침체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이런 가운데 중동 지역의 분쟁이 지금보다 커지면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고 세계은행(WB)의 경고가 나왔다. 세계은행은 지난 10월 30일(현지 시각) 발표한 '원자재 시장 전망'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원자재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당장은 제한적이지만 분쟁이 다른 중동 지역으로 확산할 경우,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역사적 사례에 기반해 진단했다. 그러면서 “세계 석유 공급량이 하루 600만~800만 배럴 줄어들 경우, 유가가 배럴당 140∼157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파티 비롤(Fatih birol)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도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기는 1973년(4차 중동 전쟁) 이후 50년 만에 다시 ‘오일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살라미 전술’로 전면전은 지연되고 있지만, 전쟁은 확전 국면이며 장기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 10월 28일(현지 시각)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가자지구에서 시작한 지상 군사작전으로 전쟁이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라며 “가자지구에서의 휴전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하마스를 후원하는 이란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향해 “레드라인을 넘었다.”라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네타냐후 총리가 침공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지상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란이 트리거(방아쇠)가 될 경우 유가가 120~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이란이 하루에 석유 1,700만 배럴이 운송되는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는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1970년대의 두 차례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제3차 오일쇼크’가 발생하면 자원 빈국인 한국은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오일 쇼크란 국제 유가가 단기간에 급격히 올라 세계 경제에 충격을 현상을 말한다. 1973∼1974년 중동 전쟁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과 1978∼1980년의 이란 혁명으로 인한 석유 생산의 대폭 감축을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국제 석유 가격이 급상승하고, 그 결과 전 세계가 경제적 위기와 혼란을 겪은 사건을 말한다. ‘제1차 오일쇼크’는 1974년 1월 1일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수출 가격은 사우디아라비아 기본 유종인 아라비안 라이트 34도를 기준으로 배럴당 11.65달러로 고시하면서 발발해 1973년 10월 수준의 4배에 가까운 수준으로 올랐다. ‘제2차 오일쇼크’는 1978년 12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서 개최된 OPEC 총회가 1979년 원유의 공식가격을 14.55달러로 인상할 것을 결의하면서 촉발해 1978년 12월 호메이니 주도로 회교 혁명을 일으킨 이란은 전면적인 석유수출 중단에 나섰고 배럴당 13달러대였던 유가는 20달러를 돌파했다. 1980년 9월 이란-이라크전쟁으로 30달러 벽이 깨졌고, 사우디가 석유 무기화를 천명한 1981년 1월 두바이유는 39달러의 정점에 도달했다. 그러잖아도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신(新) 3고(高)’ 파고까지 겹쳐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오일쇼크’까지 덮치면 물가·환율 급등으로 수출과 성장률이 더 추락하게 된다. 전쟁 장기화는 중동 전역으로의 확전 우려를 키우면서 세계 경제와 안보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당장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국제 원유 가격은 급등했다. 지난주 줄곧 안정세를 보인 1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지난 10월 27일 2.8% 오른 배럴당 85.54달러, 브렌트유 가격은 2.9% 상승한 배럴당 90.48달러에 마감했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와중에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북한과 중국·러시아 등이 무력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닥터 둠’으로 불리는 대표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미국 뉴욕대 교수는 10월 12일(현지 시각)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것 이상의 위험 요인으로 이란과 레바논의 개입을 꼽고 “이 경우 걸프만 원유 공급이 중단돼 유가가 급등하면서 경제적 충격이 클 것”이라며 “유가 상승이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을 촉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지난 10월 13일(현지 시각)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내년 세계 물가상승률은 기존 예상보다 1.2%포인트 올라 6.7%에 달하고, 세계 경제성장률은 전망치보다 1.0%p 하락해 1조 달러(한화 약 1,335조 원)가량의 손실을 입힐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가 넘는 한국으로서는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무엇보다도 유가 등 원자재값 급등은 가뜩이나 성장이 둔화하면서 경기침체 우려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엔 결정타가 될 수 있다. ‘3차 오일쇼크’ 발생은 물론 ‘동북아 제3전선’ 형성 등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단단히 대비해 만반의 대책을 세워 충격을 줄여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르면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떨어지고 소비자물가는 1.1%포인트 상승하며 경상수지는 305억 달러 감소한다. 120달러까지 오를 경우, 경제성장률과 경상수지는 각각 0.4%포인트, 516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소비자물가는 1.4%포인트 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이는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등 연쇄적으로 한국 경제에 타격을 준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통화·금융정책 전반을 점검해 물가·금융·환율 안정에 총력을 쏟는 한편 공급망 교란으로 원자재 및 에너지 수급 상황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에 대비해 수급 상황을 실시간 점검하고 안정적 수급을 위한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며 부채가 급증한 가계·기업 등도 허리띠를 졸라맬 각오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국지적인 기습 도발을 막기 위한 철통같은 안보 태세 유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당연히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