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원자력발전분야 예산 1831억 모두 삭감
中企 "업계 발전 도외시하면 산업계 격차 더 커질 것"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여야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의 처우를 개선하고 양극화를 해소하겠단 취지의 연구개발(R&D) 예산안을 발표했다. 다만 여야 모두 자기 정당에게 유리한 분야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의문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보유 기술 격차가 커 자체 기술이 없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제조 하청으로 전락하는 실정이다.
특허청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반도체 분야 특허는 전년 동기대비 881건이 증가한 6580건이 출원됐다. 그중 대기업이 3209건을 출원했는데,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합친 출원은 4분의 1 수준인 848건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글로벌 R&D 투자 상위 25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국내의 연구개발 투자 비용집중도가 주요 국가에 비해 높아 1위 기업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하도급 기업 비중은 45.6%며, 이들의 수급기업에 대한 매출액 의존률은 2009년 76.7%에서 2018년 81.8%로 증가했다.
문제는 앞서 8월 발표한 정부의 예산안에선 유독 중소기업 연구역량 성장과 관련된 항목이 줄었다는 점이다. 내년도 중기부 R&D 예산은 전년 대비 4492억 6600만원이 삭감됐다. 그 중 △제조중소기업 글로벌역량강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생활혁신형 기술개발 △중소기업기술사업화역량강화 등 11개의 중소기업소상공인 R&D 등이 전액 삭감됐다. 소부장 분야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부장)중소기업상용화기술개발 △(소부장)전략협력 기술개발 등 6개 사업의 지원금이 84% 가량 삭감됐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정부의 일괄적 R&D 예산 삭감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며, 무분별한 퍼주기식 지원은 막고 유망 산업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21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진행된 'R&D 관련 거버넌스 체계 개선' 간담회에서 "연구에 따라 평가를 객관적으로 해서, 연구비가 정부에서 더 필요한 사람은 더 받아 갈 수 있는 희망을 열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긴축정책 때문에 자식과 손자·손녀들이 빚을 안지 않게 하려한다"고 덧붙였다. 전체적인 예산 확대 계획은 없고, 예산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해달라는 의도로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예산안을 바로잡겠다며 단독으로 예산안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예산안은 정치적 배경이 깔려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가 세운 내년도 원자력발전 분야 예산 1831억원을 모조리 삭감하자 업계 및 여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산자부 예산안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계속과제 R&D 증액 내역은 소재부품장비특별회계,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등으로 2000억원 수준이다. 반면 대표적인 이재명표 정책인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1620억원),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 사업(2302억원), 신재생에너지 핵심기술개발(579억원)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대폭 증액 의결됐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에너지바우처 예산 6948억원, 에너지 수요관리 핵심기술 개발 예산에는 187억원 증액됐다. 이 가운데 문재인 정부 때 설립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의 사업지원 예산도 127억원 증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원전 중소기업 133개로 구성된 원자력동반성장협의회는 지난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위원회에서 원전 예산이 전액 삭감된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민주당이 삭감한 원자력발전 분야 예산 1831억원에는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사업 1000억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개발사업 333억원 △원전 수출 보증사업 250억원 △원자력 생태계 지원사업 112억원 등이 포함돼 있었다. 협의회는 “탄소중립 달성과 국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정치적 진영의 이념을 떠나 합리적인 기준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그동안 여야 모두 중소기업계 강화를 천명해 왔지만, 정작 업계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데다가 오히려 쇠퇴를 가속하는 정책을 남발한 셈이다. R&D 지원 축소는 중소기업의 자립성을 저해시키고 대기업의 하도급으로만 남게 해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만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나마 정부의 지원도 AI와 반도체, 바이오 분야에만 집중돼 있어 그 외 분야에 종사하는 중소기업계는 지원 혜택을 못 본다는 걱정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내년도 R&D 관련 예산 삭감이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삭감 배경을 설명했다. 대신 예산안에는 첨단 AI 디지털, 바이오,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전했다. 기타 분야 중소기업은 소외받는 중인 만큼, 전방위적인 R&D 환경이 조성돼야 하는 상황이다.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똑같은 중소기업인데도 AI와 제약바이오는 늘 기대주 대접을 받으며 정부 사업을 따낼 기회도 많다. 원래 우리 회사도 단순 무역회사였는데, 정부 사업을 따내려다 보니 직원들이 독학으로 IT 기술을 익혀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 중소기업이 전문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으니 사업 역량이 쪼개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