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홍콩에이치(H)지수(HSCEI │ 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주가연계증권 │ Equity Linked Security) 투자자들이 큰 폭의 원금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실제로 원금손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이를 대규모로 판매해온 은행과 증권사를 상대로 금융당국이 긴급 실태 조사에 나섰다. 투자 규모만도 14조 원대에 이르러 손실 규모도 수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5대 은행에서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관련 상품 규모만 8조 4,100억 원으로, 소비자 피해는 최소 3조 원 이상, 최대 5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돼 투자자들은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역대 최악의 금융사고인 라임펀드 피해액인 약 1조 6,000억 원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다.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 Derivative Linked Fund) 사태 당시 피해액이 4,000억 원대,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피해 규모가 합해서 약 2조 원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피해가 얼마나 클 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은 ELS를 판매하면서 가입자에게 투자위험과 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알렸는지 집중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ELS(주가 연계증권)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개별 주식이나 주가지수가 만기(통상 3년)까지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면 원금에 더해 약정이자를 받을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주로 은행들이 펀드(ELF)나 신탁(ELT) 형태로 판매한다. 기초자산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을 내지만, 만기에 기준 시점에 비해 기초자산 가격이 판매 시점보다 35~55% 이상 하락하면 손실이 나는데,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4대 증권사(미래·NH·KB·삼성)에서 팔려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ELS는 국내 5대 은행에서만 약 13조 원에 육박하고, 4대 증권사에서는 2조 4,0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판매 잔액은 20조 원가량이다. 증권사 간판 상품으로 홍콩H지수가 폭락하지 않으면 ‘예금금리+α’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며 은행들이 신탁과 펀드 형태로 대거 ELS를 팔았다. 그런데 홍콩H지수가 2021년 2월 7일 12,100으로 고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로 들어서 지난 11월 24일 기준 6,075.65로 반 토막이 될 정도로 하락했다. 이에 따라 최근 몇 달 새 만기가 돌아온 ELS 상품들은 45%가 넘는 원금손실이 확정됐다. 홍콩H지수가 반등하지 않으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후 만기가 되는 상품과 증권사 판매분을 감안하면 손실은 더 불어날 수 있다. 투자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함은 당연하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고위험, 고수익’으로, 위험성이 높은 투자상품일수록, 그에 따른 이익도 크다는 의미다. ELS는 100% 손실까지 각오해야 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투자자에게는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그에 따른 손실에 대한 책임 역시 투자자가 진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파생상품의 운용 목적은 리스크-오프(Risk-off │ 위험 회피)와 수익 추구로 구분할 수 있지만 어느 쪽이건 본질적인 고위험((High risk)을 동반하게 된다. 예금자 보호 장치도 없고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한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금융사의 경쟁적인 ELS 판매가 적절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벌써 “은행에서 원금손실은 없을 거라고 해서 투자했다”라는 ‘불완전 판매’에 대한 소비자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절대 원금손실 날 일이 없다”라는 상품 소개를 받았다고 분노를 표출하는 피해자도 있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이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들이 고객들에게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률과 예금상품처럼 안전하다는 점만 강조하고 위험 요소인 손실 가능성과 홍콩H지수의 큰 변동성을 제대로 알리고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당 ELS는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우량기업 50곳을 추려 산출한 지수를 추종한다. 기초자산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수익을 얻는 구조다. 당시 저금리 기조라서 은행에 돈을 넣어둬 봤자 연 1% 정도의 이자를 받던 시기라 3∼4%를 준다는 이 ELS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은행은 3~6개월마다 중도 상환이 가능한 이 상품으로 비이자 수익을 톡톡히 올릴 수 있어 판매에 열을 올렸다. 미·중 갈등과 중국 기업 실적 악화로 지수가 이렇게 급락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이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ELS는 구조가 복잡하고 ‘녹-인 배리어(Knock-in barrier │ 기초자산이 원금손실을 발생할 수 있는 최저 기준선)’를 벗어나면 대규모 손실이 나는 고위험 상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은 상품을 팔 때 충분히 이 같은 위험성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계기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9조 제4항과 제50조(투자권유 준칙)에서 투자자 보호 의무가 더욱 강화된 터다. 게다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2절 금융상품 유형별 영업행위 준수사항 중 제17조(적합성원칙)와 제19조(설명의무) 시행으로 ELS를 팔 때는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자필 설명 등을 받아야 하지만 이를 지켰다고 금융사가 할 일을 다 한 건 결연코 아니다. ELS 투자자 상당수가 고령자인 만큼 상품 구조와 위험을 요식적으로 설명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0분여 동안 인공지능(AI)으로부터 형식적으로 듣는 설명이 얼마나 충실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은행들이 홍콩H지수가 하락할 때도 꾸준히 ELS 상품을 팔았다는 점에서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시장 상황을 외면했다는 비판과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늑장 대응에 나서는 감독 당국의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파생결합증권(DLS │ Derivative Linked Securities) 사태와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의 홍역에 이어서 또 한 번 대규모 원금손실이 임박하면서 금융권의 신뢰가 크게 흔들리게 됐다. 차제에 은행이 고난도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게 적절했는지 깊이 따져볼 일이다. 금융당국이 판매사에 대한 현장 전수조사에 나선 만큼 철저히 진상과 실태를 밝혀 은행의 책임 여부를 엄중히 가려내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마련하여 무너진 금융권 신뢰 회복은 물론 판매사 책임뿐 아니라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