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고금리 장기화로 금융시장의 뇌관으로 꼽히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이 커지는 가운데 부실 리스크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공사가 중단돼 자금경색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PF는 크게 금융과 시공이 핵심인데 두 가지 모두 차질을 빚고 있어 여느 때보다 위기감이 크다는 게 작금의 시장 분위기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경매와 공매 시장에 만기를 미룬 사업장이 대거 등장할 것으로 분석됐다. 최악의 경우 전국 부동산 PF 사업장 중 절반에서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암울한 관측이 나온다. 특히 총선 이후 진짜 위기가 닥칠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올해 PF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 등으로 ‘시간 벌기’를 해왔지만,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부실 정리 및 재구조화 작업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단기 자금(브리지론 │ Bridge Loan)을 장기 자금(본 PF)으로 전환하는 것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신용평가 업계는 토지 매입 등을 위한 사업 초기대출(브리지론) 약 30조 원 중 많게는 절반가량이 손실 처리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금융당국은 최근 5대 금융지주를 비롯해 건설사와 시행사, 2금융권 등 시장 참가자들과 잇따라 만나 릴레이 회의를 열고 상황 점검과 대응책 모색에 나서고 있다. 우리 경제에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뇌관’인 PF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금융위기 상황이 닥칠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지난 12월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12월 5일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PF 담당 부사장들을 소집해 내년 시장 전망, 대주단 협약 진행 상황 등을 논의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듬해 PF 정책을 수립하기에 앞서 현장의 목소리, 건의 사항 등을 주고받은 자리였다”며 “부동산 PF 현황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수시로 회의를 갖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수익성이 떨어져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 PF 사업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 12월 4일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 KAMCO)의 ‘PF 정상화 펀드’ 운용사 5곳 관계자를 만나 집행 상황 등을 확인했다. PF 정상화 펀드는 사업장의 정상화와 재구조화를 지원하기 위해 조성됐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금융권 PF 대출 잔액은 133조 1,000억 원으로, 지난해 말 130조 3,000억 원보다 반년 만에 2조 8,000억 원 늘었고 올해 3월 말 131조 6,000억 원보다 1조 5,000억 원 늘었다. 이 중 증권사의 연체율은 6월 말 기준 17.28%까지 치솟았고, 저축은행의 연체율은 1년 새 3배로 뛰었다. 저축은행에만 부실이 집중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제2금융권 전반으로 부실이 번지는 모양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내년에 만기가 몰린 브리지론(Bridge Loan)이다. 브리지론은 ‘본 PF 대출’을 받기 전 중간다리를 놓아주는 개념으로, 부동산 개발사업 초기 부지를 매입할 자금이 부족하거나 시행사의 운영 자금이 부족할 경우 ‘본 PF 대출’을 받기 전 일시적으로 자금을 대여해 주는 것을 말한다. 부지도 매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금을 대출해주기 때문에 ‘본 PF 대출’보다 금리가 높지만 우선 대출을 받고, PF 대출이 승인되면 금리가 높은 브리지론을 상환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이 토지 매입 등을 위해 고금리 단기대출인 브리지론을 받은 뒤 공사 비용 상승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착공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상 사업은 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좀비 사업장’이 된 것이다. 이들이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한꺼번에 무너지면 돈을 빌려준 중소 증권사와 저축은행 등 금융권으로까지 위기가 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1년 말까지 1%를 밑돌던 부동산 PF 연체율은 지난 6월 말 2.17%로 갑절 이상 늘었다. 경기 급랭과 신용 경색에 따른 건설사 등의 연쇄 도산도 우려되는 대목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