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혜나 기자  |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확대 적용을 놓고 노사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지난 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내년부터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중처법을 적용하기엔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공감했다. 이에 적용 시행일을 내년 1월 27일에서 2026년 1월 27일로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계 역시 중처법 적용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진행한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실태 및 사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80.0%가 중처법 시행에 대해 ‘아직 준비 못했다’고 응답했다. 85.9%는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는 그간 중처법 적용에 앞서 대비책을 마련해온 바 있다. 정부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현장 안착을 위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안전투자 혁신사업 등 산재예방 지원사업을 신설했다. 관련 예산 규모는 지난 2020년 4198억원에서 올해 1조1987억원으로 확대했다. 다만 중소기업계는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은 극소수로 아직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고용부와 공단에서 중대재해 컨설팅을 진행해 왔지만, 83만개의 중소기업 중 2%인 1만6000개만 컨설팅을 받았다”며 “특히 산업재해 고위험 사업장 8만개가 있는데 아직 한 번도 컨설팅을 받지 못한 곳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컨설팅을 받았더라도 즉시 현장에 적용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중기중앙회는 올해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에 참여한 50인 미만 사업장 75개사를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참여 효과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컨설팅이 진행되더라도 즉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절반 가량인 46.7%가 ‘안전 전문인력 등 업무수행 인력 부족’을 꼽았다. ‘의무사항이 지나치게 어렵고 불명확해서’(24.4%), ‘업종별 맞춤형 컨설팅이 이뤄지지 못해서’(15.6%)가 뒤를 이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안전 전문인력을 구하는 것은 소규모 기업으로서는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어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56.0%)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에 참여했더라도 실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까지는 ‘6개월 이상 시간이 필요’(6개월~1년 24.0%+1년 이상 32.0%)하다고 답했다. 컨설팅을 받은 즉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할 수 있었다는 응답은 1.3%에 불과했다. 산업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법 적용을 늦출 수 없다는 노동계의 입장도 강건하다. 한국노총은 4일 성명을 통해 “중처법 전면 적용 유예는 계속해서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사망률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보다 높다는 것은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 현황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산재사망 노동자 1만9860명 중 사고사망자는 9380명이다. 이 중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는 1만2045명, 이 중 사고사망자는 7138명이다. 사고사망자 중 50명 미만 사업장의 비율이 76%에 달한다. 50명 미만의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중대재해 사고사망 비중이 50명 이상 사업장보다 높은 것이다. 또한, 노동계는 중처법 적용 유예로 2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해도 기업의 준비 정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산업재해를 최소화해야 하고, 인명피해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도 당연히 공감하고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할 필요성도 체감하고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무리한 법 이행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현재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에게 여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처법이 시행된다면 지금 업계에서 우려하고 있는 범법자 대거 양산 및 그로 인한 기업 파산 등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안전 전문 인력 확보 애로사항을 해소하고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2024년부터 2026년까지 2만명 이상 전문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50인 미만 기업 대상 컨설팅 지원의 경우, 내년에는 올해 1만5000개소보다 1만2000개소 늘린 2만7000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