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미래 경제를 좌우할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갈수록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반도체 등‘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 수출시장에서 2022년 한국의 글로벌 점유율은 2018년 대비 약 25.5% 줄어 경쟁국과 순위가 역전됐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2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 수출시장 점유율 분석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수출시장 점유율이 2018년 8.4%에서 2022년 6.5%로 최근 4년 새 무려 25.5%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일반 변화율 공식을 적용하면 하락률은 22.6%지만, ‘로그 차분’ 방식을 이용한 결과 하락률이 25.5%로 도출됐다고 설명했다. 수출시장 점유율은 한 국가의 수출이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수출경쟁력을 측정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이란 정부가 지난해 3월 15일 제14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발표한 ‘국가 첨단산업 육성전략’에서 언급된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미래차 ▷바이오 ▷로봇을 의미한다. 2022년 수출 점유율은 2018년 대비 미국(-1.3%)과 중국(-2.7%)은 우리보다 적게 하락했고 대만(31.8%)과 독일(4.6%)은 오히려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2018년 우리나라의 6대 산업 수출시장 점유율은 1위인 중국(14.5%)에 이어 2위(8.4%)였으나 2022년에는 여전히 중국(14.1%)이 1위를 차지했고 독일(8.3%)과 대만(8.1%)·미국(7.6%) 등 3개국에 밀려 한국(6.5%)은 5위로 급락했다. 2022년 우리나라 ‘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 수출액은 총 1,860억 달러로 2018년 1,884억 달러 대비 1.2% 감소했다. 우리 전산업 수출에서 6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에 비해 2022년은 3.9% 하락했다. 이는 시장이 커가는 속도를 한국의 수출이 따라잡지 못했다는 의미다. 한국이 앞서 장악했던 분야에서 중국 등 경쟁국에 기술력이 따라잡히고, 급성장하는 새로운 시장에선 한국의 몫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 전산업 수출 규모가 23.7% 증가하고 세계 6대 산업 수출도 24.2% 증가하면서 세계 전산업 수출 중 6대 산업 수출 비중이 0.6% 상승했으나 우리 6대 산업 수출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 수출 비중이 감소했음에도 경쟁국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2022년 우리 수출에서 6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2%로 주요 6개국(한국,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대만) 중 대만(48.1%) 다음으로 높았다. ‘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경쟁국에 비해 높다는 의미다. 한국의 ‘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 수출 총액의 약 70%를 차지하는 반도체의 약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 2018년부터 4년간 세계 반도체 수출시장은 37.5% 성장했는데 한국의 점유율은 13.0%에서 오히려 9.4%로 하락했다. 한국이 강점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정체되었던 반면에 미국 기업이 설계(Fabless)하고 대만 TSMC 등이 위탁생산(Foundry)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가 성장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우리 6대 산업 중 수출 규모가 가장 큰 반도체는 2018년 대비 2022년 수출시장 점유율이 32.5%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동기간 디스플레이 수출시장 점유율은 4.8% 상승해 산업별로 대조를 이뤘다. 문제는 다른 첨단 분야에서 한국은 중국에 시장을 빠르게 내주고 있다. 디스플레이 부문에선 한국이 장악했던 액정표시장치(LCD) 시장마저 중국에 뺏겼다. 최근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도 턱밑까지 추격당하고 있다. 전기차 산업의 약진을 발판 삼아 중국은 작년 글로벌 자동차 수출 1위에 올랐고, 2차전지 부문에서도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서비스 로봇은 한국의 안방 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수출액이 31.8% 늘어나는 와중에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오히려 쪼그라들었고, 세계 1위의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의 선전 덕에 대만의 점유율은 크게 늘었다. 당장 반도체 수출 부진보다 더 큰 문제는 미래 성장동력인 주요 첨단기술 대부분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퇴조 양상이다. 최근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공개한 ‘글로벌 핵심 기술 경쟁 현황’을 보면, 국가별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미래 핵심 기술 64개 가운데 단 한 분야에서도 1위에 오르지 못했다. 중국(53개)과 미국(11개)이 1위를 나눠 가진 데 반해 한국은 고성능 컴퓨터와 전기 배터리 분야에서 1, 2위와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가운데 고작 3위에 오른 게 최고다. 특히 반도체 강국이라는 우리의 자부심과 달리 ‘고급 집적회로 설계·제조’ 분야에서 마저 한국은 5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 분야에서도 1, 2위는 미국·중국의 독식이었다. ASPI는 “이 지표는 5~10년 뒤 관련 산업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벌어진 첨단산업 분야의 기술력을 빠른 기간 안에 따라잡지 못하면 산업경쟁력을 넘어 국가경쟁력 하락을 막을 수 없다는 준엄한 경고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하게 되면 미국과 중국이 향후 첨단 반도체와 배터리·바이오 산업 등을 양분하며 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한국은 국가경쟁력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반도체와 2차전지 등은 한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산업이다. 삼성전자 등 몇몇 주요 대기업의 선전에 한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현실은 저만치 앞서 달리는 경쟁국을 따라잡기엔 힘이 많이 부친 모양새다. 최근 들어 각 경쟁국의 강력한 지원 속에 글로벌 기술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를 비롯한 우리 첨단산업의 수출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악화일로(惡化开始)를 내달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특히 중국의 급부상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중국은 2015년 첨단산업 중심의 산업구조 개편을 위한 ‘중국제조 2025’를 시작하며 첨단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일본도 첨단 공장 유치를 위해 50년 이상 묵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까지 풀고 나섰으며, 미국과 유럽도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보조금으로 수십조 원씩 쏟아붓기로 했다. 반도체 수출시장 점유율이 13.0%에서 오히려 9.4%로 하락한 데 이어서 2차전지도 한국 점유율이 12.7%에서 7.6%로 뚝 떨어진 반면 압도적 1위인 중국은 25.9%에서 43.6%로 급등했다. 한국이 과거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가공해 재수출하는 분업구조에 안주하다 미·중갈등 격화로 급변하는 공급망 재편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가 크다. 중국은 이미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기술경쟁력도 높아져 중간재 수출을 통해 누렸던 중국 특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은 매년 500억 달러 이상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던 중국에서 지난해 180억 달러 적자를 봤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역 의존도가 75%나 되는 한국으로서는 수출 확대 없인 먹고살기 힘든 나라다. 첨단산업의 수출경쟁력 상실은 당연히 국가의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급물살을 탄 인공지능(AI) 혁명과 이로써 촉발된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은 한국 경제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엔비디아(NVDA)가 업계를 이끌어오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제라도 서둘러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통찰력과 시장 지배력 강화에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선제적·공격적 경영을 통해 우리 대표 기업들이 글로벌 수출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길 소망하고 기대한다. 한국은행은 정보기술(IT) 분야의 수출을 뺀다면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1.7%로 지난해에 이어 1%대에 그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다. 저성장 고착화의 늪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민간의 투자와 혁신을 촉진 시켜야만 한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고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은 단거리 경주처럼 시간 싸우는 속도전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서둘러 세제·금융 등 더 과감한 지원책을 내놓고 규제 혁파, 노동 개혁 등으로 민간의 혁신과 기업 투자를 뒷받침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수출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기술력 차이임을 각별 유념하고 핵심 기술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융합형 제품·산업을 키우는 데 지혜를 모으고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 신성장 동력을 키우고 총성 없는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