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주주환원 늘려라" vs 금감원 "건전성 챙겨라"
딜레마 빠진 금융권 "정부가 뜨거운 아이스커피 주문"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지난해 실적 결산에 돌입한 금융지주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환원책 확대를 주문하는 동시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을 요구해서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당국의 이같이 상충된 주문을 두고 ‘뜨거운 아이스커피’를 주문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고금리로 견조한 이자이익을 낸 금융지주들은 주주 환원율 제고와 충당금 적립 사이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앞서 가졌던 실적 발표 시즌에는 주주 환원을 약속했지만 금융지주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정부가 한 편에서는 저평가된 주가순자산비율(PBR) 상향을 추진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올해 경제 상황을 고려해 충분한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당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정부 정책 간에 '엇박자'가 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본 여력이 정해져 있는데 충당금을 더 쌓는 동시에 주주 환원율을 올리라는 건 모순된 기조"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손실흡수능력 제고와 주주 환원 정책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고 전했다.
실제 금감원과 금융위는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의 경우 건전성 관리 압박이 거세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단기 성과에 치중해 PF 손실 인식을 회피하면서 남는 재원을 배당·성과급으로 사용하는 금융사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 금융위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상장사가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지 않은 경우 명단을 공개하는 ‘네이밍 앤드 셰이밍’(공개 거론해 망신 주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자본 여력이 큰 대형사와 그렇지 못한 중소형사 간 여건도 차이가 크다. 대형 금융지주들은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주주환원책을 발표했지만 지방금융지주 등은 충당금 추가 적립으로 작년 4분기 실적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이들 회사는 건전성 지표도 상대적으로 나빠 배당 규모가 전년 대비 많이 감소할 수 있다.
한편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5일 업무계획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당국이 요구하는 충당금 등 조건을 맞춘 이후에도 초과이익이 많다면 주주환원을 통해 적정한 주가 평가를 받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