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전의교협·대전협·의대학생협, 의료계 공동대응 모색
일부 의대교수단체 “정부와 협상 의사 있어”
환자단체 “정부 강대강 전략, 의료공백 초래” 비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정부가 2000명 의대증원에 대한 대학별 배분을 확정한 가운데, 그동안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였던 의료계 단체들이 결집 행보에 나서고 있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등 4개 단체는 전날(20일) 오후 8시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는 대전협과 의대협 대표들과 전국 의대 교수들이 참석했다. 현재 신임 회장 선거에 돌입한 의협은 의견을 전달하는 형식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이번 의정 갈등 사태가 촉발한 후 4개 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일은 드물었다. 증원 배분 확정 이전까진 각 단체는 입장을 밝혀왔다. 심지어 일부 의대 교수 단체가 정부와 증원 규모 및 시기를 협상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자, 의협이 이를 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 참여한 전의교협은 오는 25일 사직서를 제출키로 결정한 ‘20개 대학이 모인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 의대 비대위’와는 다른 단체다.
4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였지만, 합의점 모색과 구체적 행동 방침은 결정되지 않았다. 이들은 일단 소통을 시작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단 입장이다. 조윤정 고려대 의대 교수는 전의교협 브리핑을 통해 "정말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개 단체가 서로 협의하면서 정부와 마음을 터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서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나 학생들 의견을 배제한 채 전의교협이나 의협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전날 SNS로 "21일 서울에서 의협과 전의교협 선생님들을 만나려 한다"고 밝혔다.
다만 정치적 행보도 불사할 것이란 의협과는 달리, 전의교협 및 일부 의대 교수 단체는 아직 정부와 협상 의지가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의료계 단체들의 방향성이 일치할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오늘부터 14만 의사의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갈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정치권과 연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 결정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협상 의사가 있다는 중립적 태도를 취했다. 비대위는 "정부의 발표가 일방적이고 급진적이라 의료개혁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면서도 "정부는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전공의들과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본다. 여전히 중재자로서 정부와 대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진료 공백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을 지키겠다는 기존 입장도 고수한다.
서울의대 교수협 비대위를 포함한 전국 20개 대학이 모인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달 25일부터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사직서를 낼 계획이다. 25일로 의결한 배경엔 해당 일정이 정부로부터 행정 처분 사전 통지서를 받은 전공의들이 의견을 제출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의 면허정지 처분이 다음주부터 본격화된다고 경고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강경파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환자단체마저 정부의 의대증원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확정 발표한 정부를 환영만 할 수 없다"고 입장문을 냈다. 연합회는 "전공의의 사직에 이어 교수마저 의료현장을 떠나는 상황 속에서, 중증 환자들이 입을 피해에 대한 대책은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 사례가 1600건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정부가 도대체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 정책으로 의정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비수도권 대학과 국립대 중심의 2000명 의대 증원 배정만으로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붕괴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해당 의대 증원을 대폭 확대한다고 해서, 배출되는 의사들이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에 근무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강대강 전략이 결과적으로 의료공백을 초래하면서, 환자 및 시민 단체마저 의료계의 투쟁 명분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