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중동리스크 등 미반영...“낙관 힘든 상황”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해외 주요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기대 이상의 호조를 보이는 수출이 전체 경제성장률을 견인할 거란 기대감에서다. 다만 변수가 산적하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가운데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가 내수 부진으로 이어져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만큼 수출과 내수 간 괴리가 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IB)인 UBS는 최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2.3%로 높였다. 앞서 씨티는 2.0%에서 2.2%로, HSBC는 1.9%에서 2.0%로 각각 전망치를 높게 잡았다.
씨티는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인공지능(AI) 투자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가 한국의 설비투자를 확대할 것”이라며 한국의 올해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 전망치도 3.4%에서 3.8%로 높였다.
HSBC는 미국의 강한 성장세와 중국의 경기 회복에 힘입은 글로벌 무역 증가 덕분에 한국의 수출 모멘텀이 계속 뒷받침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3%로,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2%로, 각각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내놓은 전망치를 유지했다. 우리 정부(2.2%)와 한국은행(2.1%) 전망치를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동 리스크 등 최근의 대외 여건이 반영되지 않았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동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일각에선 2%대 성장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중동 갈등 고조로 국제유가가 상승해 수입물가가 급등하면,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해 수출과 내수 모두 위축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지난해 12월 배럴당 7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는 올 들어 상승세로 전환해 9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22일 기준 두바이유는 배럴당 86.41달러를 기록했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이 다시 보복전을 펼치면 100달러를 넘겨 130달러대까지 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 상황이다.
환율도 올해 이례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1400원대까지 치솟았다. 최근 1370∼1380원대로 내려왔지만 지난해 말 종가(1288.0원) 대비 7.0% 이상 상승한 수치로, 같은 기간 기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의 6.9%, 2009년의 5.8%보다 높은 상승률이다.
유가와 환율의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고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를 더 얼어붙게 한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122.21)보다 0.2% 높은 122.46(2015년=100)으로, 지난해 12월에 이어 4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보다는 1.6% 올라 전년 동월 대비 기준 지난해 8월 이후 8개월 연속 상승했다. 농림수산품뿐 아니라 유가 상승으로 공산품까지 오른 탓이다. 앞서 발표된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농산물 등 체감물가 상승과 내수 부진 영향으로 4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서지용 상명대(경영학부) 교수는 “수출이 호조를 보이지만, 환율 급등으로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고물가로 민간소비가 위축되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오히려 하향 조정될 개연성도 있다”며 “대중국 수출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계절적 수요가 늘어난 반도체 역시 하반기에는 둔화될 가능성이 있어 2%대 성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로 2.2%를 제시했던 현대경제연구원의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이 한은 통화정책을 거쳐 내수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그 부분을 지켜봐야 하는데 연준 의원들이 말을 자주 바꾸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중요한 건 환율인데 이 역시 통화정책과 관련이 있다”며 “작년 경제성장률이 1.4%였기 때문에 올해는 기저효과로 2%를 넘겠지만, 그 수준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통화정책에 달렸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내수가 예상보다 크게 회복된 모습을 보였지만 지속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25일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 설명회에서 “1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민간소비, 건설투자 등 성장기여도가 상당히 높아 내수가 회복세를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지속 가능성에 대해선 지켜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신 국장은 “1분기 민간소비가 높은 건 대외활동 증가, 휴대폰 출시 효과 등이 작용하고 소비심리가 작년 4분기보다 상회한 부분이 반영된 것”이라며 “전년 동기비로는 1.6% 증가한 수준이기 때문에 완전히 회복으로 돌아섰다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