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신임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이철규·배현진 의원의 불화로 국민의힘이 시끄럽다. 총선 참패 이후 전열 정비에 주력 중인 여당이 본격적인 수습도 전에 또 다른 잡음을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당내 친윤석열(친윤)계 세력 분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태라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완패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당을 재정비해야 하는 지도부는 아직까지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빈자리를 황우여 상임고문이 채웠을 뿐, 비대위원 인선을 신임 원내대표 선출 뒤로 미루며 당 수습의 첫발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여당은 9일에야 추경호 의원을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그러는 사이 당에선 또 다른 잡음이 터져 나왔다. 이철규 의원은 지난 8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원내대표 선거 국면에서 뒤로는 자신에게 출마를 권유해 놓고, 공개적으론 불출마를 요구한 의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진행자가 '그 의원이 배현진 의원이냐'고 묻자, 이 의원은 "이름 얘기 안 하겠다"고 답하며 시선은 배 의원에게로 쏠렸다.
그러자 배 의원은 즉각 이 의원과의 통화 녹취 일부를 공개하며 반박에 나섰다. 배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녹취에 따르면 배 의원은 이 의원에게 "저는 안 나오시는 게 맞다고 본다. 다치신다"며 이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를 만류했다.
배 의원은 녹취록과 함께 게재한 글에서 "단언컨대 저는 이 의원에게 전화든 대면이든 원내대표를 권유한 사실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외려 지난해 서울 강서 선거 패배 뒤부터 지도부답게 함께 책임지고 자중하자고 거듭 권유해 왔다"고 했다. 이어 "코너에 몰리면 1만 가지 말을 늘어놓으며 거짓을 사실로 만들고, 주변 동료들을 초토화 시키는 나쁜 버릇 이제라도 꼭 고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의 불화가 공개적으로 표출되자 당에선 우려가 쏟아졌다. 총선 참패 후 실의에 빠진 당을 수습하는 데 뜻을 모아도 부족한 판에, 내부 갈등만 부각한다는 것이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전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배 의원이 꼭 저렇게 녹취록까지 공개해 가면서 논란을 만드는 게 좋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며 "(이 시점에서) 진실게임 양상을 벌이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여당 관계자도 <매일일보>에 "(이런 내분 표출은) 지금 당에 중심이 없어서 그렇다"며 당 정비가 필요한 시점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행동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가 당내 친윤계 세력의 분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찐윤'(진짜 친윤)으로 통하는 이 의원과 한때 '신(新) 윤핵관'으로까지 불렸던 배 의원은 지난해 3·8 전당대회 이후 김기현 지도부가 출범했을 때 각각 사무총장과 조직부총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당을 함께 이끌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이 의원이 사무총장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둘의 관계가 멀어졌다고 전해진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본지에 "정권 조기 레임덕 얘기가 나오는 지금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원팀 친윤'은 이젠 어렵지 않겠느냐"며 "친윤계라도 이젠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