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염재인 기자 |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데가 없어 땅에 버려진다. 보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
4·10 총선 참패 수습에 나선 국민의힘 '황우여 비대위'의 방향 설정이 이상하다.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취임 일성으로 이같이 보수 정체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7일에도 총선 참패 원인 중 하나로 '보수 분열'을 꼽으면서 회견 당시 발언이 실언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줬다.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에서 보수 결집에 실패했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분석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당시 총선 민심은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었다. 불통과 독선의 정치로 일관하며,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내세운 '공정과 상식'에 반하는 내로남불에 화난 민심이 등을 돌린 것이 참패 원인이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의중만 살피며 국민의 뜻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여당도 한몫했다.
민심 이반의 중심에는 '중도층'이 있었다. 실제 국민의힘은 전체 지역구 254곳 중 절반에 가까운 122석(48%)이 몰린 수도권에서 19곳 확보에 그쳤다. 충청권에선 전체 28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이중 대전과 세종에서는 단 1명의 당선인도 배출하지 못했다. 중도층이 많은 수도권, 충청 등에서 완패한 것이다.
국민의힘 지역구 당선자 90명 중 과반이 넘는 59명(65%)이 영남권이라는 사실에 비춰볼 때 보수 결집 실패를 운운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예상과 달리 부산 등 다수 지역에서 고전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이변 없이 텃밭 사수에 성공했다. 진보 진영이 과거에 비해 여당 우세 지역에서 격차를 좁힌 것도 보수가 결집하지 못한 탓이 아니라, 정부·여당 실정이 영향을 미쳤다는 게 더 설득력 있는 분석일 것이다.
총선 참패 후 영남·친윤(친윤석열)계 책임론이 불거지고 수도권·비윤(비윤석열)계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역시 윤 대통령과 주류 친윤계의 정치적 실패에서 기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를 '친윤'으로 도배하고 있다. 현재 당내에서는 친윤계가 주도했던 '당원 투표 100%' 규칙 개정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현 비대위 구성에서 실제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이기에 앞서 집권 여당이다. 총선 당시 야당의 '정권 심판론'에 맞서 각종 심판론을 내세웠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집권 여당은 야당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잘 살 수 있도록 국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이제는 힘들더라도 자신을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