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 | 국토교통부는 지난 14일 공공 사전청약 제도 폐지를 발표했다. 사전청약은 아파트 본 청약 2~3년 전 미리 당첨권을 주는 제도다. 식당에 가기 전 먼저 예약을 하고 번호표를 주는 것과 같다.
문제는 농사도 짓기 전 주문을 받았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가격까지 미리 정했다는 것이다. 주문을 한 사람은 약속한 날짜와 금액에 밥을 먹기를 원하지만 식당주인은 날짜와 가격을 지킬 능력이 없었다.
사전청약제도는 MB정부 당시 한 번 실패했던 제도임에도 문재인 정부시절 집값이 급등하자 수요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도입됐다. 윤석열 정부도 ‘뉴:홈’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공공분양 사전청약에 대해 열심히 홍보를 했지만 하루아침에 정책을 뒤집은 것이다.
변명은 더 황당하다. 군포 대야미는 고압 송전선로 이설 문제로, 수원 월암은 맹꽁이 이전 때문에, 남양주 진접은 문화재 발견, 성남 낙생은 방음터널 화재, 성남 복정은 주민이 이주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옛 속담이 딱 맞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 사회에서 모든 문제는 다 돈이다. 친구사이도 부부사이도 대부분 문제는 돈이다. 재건축과 재개발사업도 그렇고 대형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사전청약제도는 추정분양가를 명시하는데 최근 건축비가 급등하면서 일정준수 문제를 넘어 약속했던 추정분양가를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LH는 택지조성을 통해 얻는 이익으로 상계처리를 할 수 있으나, 급등한 건축비로 인해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자 부랴부랴 폐지라는 극약처방을 내린 듯하다. 인천 계양 A2블록의 경우 당초 사업비가 2676억원이었지만 최근 3364억원으로 25.7%나 증가했다.
사전청약에 당첨이 된 99개 단지 5만2000가구의 수분양자들은 추정분양가에서 과연 얼마나 더 올라갈지, 입주예정일에서 얼마나 더 늦어질지 불안하다.
주변 시세보다는 저렴하고 입지도 좋은 곳이라면 기다리겠지만 그렇지 않은 단지에서는 많은 포기자들이 나올 것이다. 물론 포기한다고 당장 큰 불이익은 없지만 그 동안 분양가는 천정부지 올랐고, 좋은 청약단지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하다.
또 사전청약을 기다리는 분들은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을 하지나 말 것이지 실컷 기대하게 해 놓고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나 싶다.
친구끼리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미안하다 사과를 하고 한턱을 내는데 LH는 맹꽁이 때문에 못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계약금 및 중도금 분납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땅이 떨어진 정책의 신뢰가 이제 지하실까지 내려가고 있다.
비용 때문이면 솔직히 비용 때문이라 설명하고 공공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과 계약자들이 추가로 책임져야 할 부분을 설명해야 한다. 이후 늦어지는 일정을 명확하게 알리고 당첨자와 청약대기 수요자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허겁지겁 숫자만 바라보며 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제대로 꾸준히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