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인류세에 이르러 기후는 더 이상 우리 ‘외부’에 있지 않다. 인간 활동이 기후를 변화시키고, 그에 대한 지구의 폭력적 반작용이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굳건한 근대적 제도들은 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인간과 비인간, 사회와 자연을 엄격히 구분하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들 간 ‘하이브리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뤼노 라투르는 인류세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간과 비인간의 뒤얽힘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이브리드들을 온당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론과 행위 원칙을 제시하며 ‘생태적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라투르 사유의 출발점은 과학기술학이다. 오랜 기간 실험실을 세밀하게 관찰해 과학지식의 생산 과정에서 비인간이 담당하는 역할을 조명했다.
라투르는 이 인류학적 연구로 세계가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수많은 결합으로 이루어짐을 발견했고, 그러한 통찰은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ANT를 사회학에 적용해 ‘사회적인 것’이라는 기존 범주의 허구성을 폭로했으며, 자연과학에서 제기된 가이아 이론을 재해석해 새로운 정치생태학을 주창했다. 이를 바탕으로 라투르는 과학, 기술, 법, 종교, 정치 등 근대성을 이루는 여러 ‘존재양식’을 폭넓게 아우른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인용되며 우리 시대 학문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라투르의 사상을 열 가지 키워드로 조망한다.
모든 저작 저변에 흐르는 ‘비환원’의 원리란 무엇인지, ‘코스모폴리틱스’는 어떠한 정치적 기획인지, ‘지구정치신학’은 우리에게 어떠한 통찰을 제공하는지 등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수많은 연결망들로 이루어진 이 세계의 진정한 현실을 이해하고 탈인간중심적 문명을 이룩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는 과학기술을 주제로 철학과 인류학, 사회학을 넘나드는 학제적 연구를 선도했던 프랑스 학자다. 그가 대표하는 ‘행위자-연결망 이론’은 과학기술학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우리는 결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다≫(1991/1993)와 ≪존재양식의 탐구≫(2012/2013)는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해 크게 주목받았다. 생애 후기에는 인류세의 기후 위기에 대한 연구에 집중해 가이아 이론을 재해석한 정치생태학 저서인 ≪가이아를 마주보기≫(2015/2017), ≪지구로 내려오기≫(2017/2018), ≪생태계급의 출현≫(2022) 등을 발표했다. 자신의 학문을 예술 전시회와 연극 공연에도 연결했으며, 백남준국제예술상(2010), 홀버그상(2013), 교토상(2021)을 수상했다.
지은이 김환석은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부 과정과 석사 과정을 졸업했고 런던대학교 임페리얼칼리지에서 과학기술사회학으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 위원, 한국이론사회학회 회장을 지냈다. 과학기술사회학과 신유물론이 주된 연구 분야다. ≪과학사회학의 쟁점≫(2006)과 ≪코로나 팬데믹과 문명의 전환≫(2024)을 썼다. 공저로는 ≪한국의 과학자사회≫(2010), ≪생명정치의 사회과학≫(2014), ≪포스트휴머니즘과 문명의 전환≫(2017), ≪21세기 사상의 최전선≫(2020), ≪신유물론: 몸과 물질의 행위성≫(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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