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첨단기술 개발과 산업화가 경제 발전의 추동력(推動力)이자 성장(成長)의 모멘텀(Momentum)인 시대에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가 잰걸음이지만 만성적 두뇌 유출에서 벗어나지 못해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데 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
국내 교육기관의 과학기술 인력 공급이 산업계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내의 과학기술과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고급두뇌의 해외 유출이 갈수록 계속되고 있어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교육을 받고 연구개발 경험을 쌓은 고급두뇌의 해외 유출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국내 과학기술 분야 일자리가 빠르게 늘어나는데 관련 분야 대졸자 배출 속도는 이에 못미쳐 인력 부족이 우려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5월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최근 과학기술인력의 고용 특성과 시사점’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 국내 과학기술인력 규모는 약 196만 명으로 지난 4년간 연평균 5.3% 늘었다. 반면 이공계열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는 566만 명으로 지난 4년간 연평균 3.6% 증가했다. 경총 관계자는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2021년 이후 인력 증가세가 빨라지는 모습”이라며 “최근 이공계 학사·석사·박사 학위 소지자의 연평균 증가율은 과학기술 인력 증가세에 비해 다소 낮게 나타나는데 이는 과학기술 분야의 고등교육 인력양성이 일자리 창출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19~2028년 10년 간 국내 과학기술 인력 수요는 71만 3,000명, 공급은 70만 3,000명으로 공급이 1만 명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공급되는 과학기술 인력의 약 절반이 비(非) 과학기술 직무에 종사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 두뇌 유출은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스위스 로잔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이 평가한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2021년 5.28(24위)에서 2023년 4.66(36위)으로 추락했다. 3년 만에 1점 가까이 낮아졌다. 해당 지수가 0에 가까울수록 인재가 외국으로 더 많이 나간다는 의미다. 국가별로는 스위스가 ‘고급 숙련인력 유인지수’ 8.97로 가장 높았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7.61로 상위권(5위)에 포진했고, 중국도 5.35(35위)로 한국을 앞질렀다. 해외로의 인재 유출은 이공계 대학의 인재 유입 감소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23년 서울대 이공계(전기) 박사 입학 경쟁률은 1.06대 1에 그쳐 간신히 1을 넘겼는데 반면 2022~2023년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은 전년 대비 8%나 늘어난 4만 3,850명에 달했다. 포항공대(포스텍)의 대학원 신입생 충원율도 2021학년도 79.1%에서 2024학년도 74.3%까지 낮아졌다.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학생들의 숫자도 57명에서 68명까지 11명이나 늘어났다. 열악한 이공계 인재 처우에 R&D 예산 삭감, 의대 선호 현상 등이 합쳐져 연쇄적인 ‘이공계 엑소더스(Exodus)’까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젊은 고급두뇌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이 국내 10대 기업들에서는 50대(삼성전자는 40대) 이상 임직원이 무려 27.3%에 이를 정도로 노화 현상이 극심해져 혁신력 저하마저 심히 우려되고 있는 현실이다. 인재 유출의 핵심에는 ‘처우 차이’도 있다. 최근 빅테크들의 연봉 상한선은 하늘 높은지 모르게 높아지고 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는 핵심 인력에게 1,000만 달러(약 138억 원)의 스톡옵션을, 메타는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포함해 최대 251만 달러(약 34억 원)를 준다. 반면 한국의 이공계 인재 연봉은 아무리 높아도 2억~3억 원이 상한선이다. 경총 관계자는 “과학기술 분야에 고급 인력을 공급하는 이공계의 졸업자 배출 속도가 계속해서 더뎌지면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인력의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학 전문가는 10만 3,000명으로 지난 4년간 연평균 7.4% 증가했다. 20~30대 젊은 인력의 비중이 69.2%로 높았고 월평균 임금 수준은 400만 원이다. 석·박사 학위를 소지한 고학력자 비중이 56.2%로 전체 노동시장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공학 전문가는 73만 6000명으로 연평균 6.2% 증가했다. ICT 분야처럼 남성 인력의 비중(87.6%)이 높아 공학기술 분야에 여성 인력의 진출과 육성이 원활하지 못했다. 50대 이상 인력 비중은 24.4%로 과학 전문가 10.0%나 ICT 전문가 14.5%에 비해 고령 인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 월평균 임금은 507만 원으로 다른 과학기술 인력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악화일로(惡化节节高升)로 치닫는 두뇌 유출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이공계 인력의 연평균 국내 유입은 4,000명에도 이르지 못한 데 반면 해외로 떠난 이공계 학생은 34만 6,239명에 달한다. 이들이 귀국하면 국가 자산이 되지만 상당수가 미국 등 현지에서 연구개발직이나 교수로 취업해 국내에서는 고급두뇌 가뭄을 넘어 굶어 죽어가는 기근(飢饉)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