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과 기후 위기’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라지는 양반문화와 선비정신은 1950년 6·25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폐허 그리고 전쟁에 의한 상처가 발단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한다.
옛날에 양반하면 단순히 경제력도 갖추고 많은 식솔도 거느리면서 벼슬한 사대부로 상류층 신분이라 할 수 있으나, 선비는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녀 존경받고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선비정신 즉 인격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이 양반문화와 함께 조선의 시대정신이자 사회와 문화를 지탱하는 힘과 사상적 역할을 했다. 명문가 집안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최부자집, 최진사집은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집안으로,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했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고 했다. 또한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는 전통과 가훈이 전해져 오면서 단순히 그 집안이 품고 있는 부(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영화 ‘가문의 영광’ 촬영지로 구한말 만석꾼 집인 여수 봉소당(鳳巢堂)의 김한영 선생 후손들이 성실한 소작인들에게 남몰래 덕을 쌓고, 지나가는 과객에까지 자립의 발판을 만들어 주는 등 적선공덕(積善功德)으로 여순 반란사건 때 살상과 충돌의 한복판에서 과거 도움을 받은 소작인의 아들이 좌익세력 대장으로 완장을 차고와 김한영 선생의 아들을 알아보고 탈출을 도와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임금이 내린 여러 벼슬, 나중엔 우의정까지 사양하는 상소문을 40차례 이상 올린 논산 명재 윤증 선생이 철저한 자기관리와 검소한 제사, 가례 등을 강조한 유훈을 남겼으며 ‘종학당’이라는 사립 교육기관을 설립해 문중의 후손뿐만 아니라 주변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교육에 따른 노동력 손실 대가로 오히려 장학금을 지급하고 서민 먹을거리인 양잠을 양반 집안에서 해 버리면 서민들 밥 굶는다는 이유로 윤씨 집안은 양잠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는 생전 처신과 가르침은 진정한 선비정신의 실천이다. 이러한 명문가들의 적선과 배려 그리고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의식이 역사적으로 동학에서 6.25까지 격변의 시기에 가문을 지켜주었다. 현대의 재벌기업 오너들도 이러한 옛 명문가들의 도덕성과 리더십, 불굴의 용기를 교훈 삼아 기업의 비전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바람직한 오너상(像) 구현이 필요하다. 옛말에 적선지가(積善体验中心)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선행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慶事)가 일어난다는 말은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즉 선비정신이 한국형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누군가가 명문가 집안이 과거 행적이나 살아온 길을 알려면 동학때, 6.25 등 사회적 격변기 당시 죽었는지 건재했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적선하고 베풀었던 명문가는 확실히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의 경우, 시리아 등 내전으로 약탈이 난무하는 중동국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몇백 년 전 명문가의 행적(行跡)은 세상에 비밀이 없고 기록이나 인터넷 등의 영향이 빛을 발하는 요즘의 스포츠스타나 연예인 또는 고위층 자녀들이 학교폭력, 음주 사고후 운전자 바꿔치기 등은 물론 대기업이나 직장 상사의 갑질이나 가스라이팅 등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