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집값 폭등세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이 16주 연속, 전셋값은 60주 연속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더 선명해졌다. 1~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 중 9억 원 이상 거래가 절반을 넘었다.
전고점을 넘은 신고가도 잇따르고 있어 시장에서는 수급 불균형을 우려하며 앞으로 집값이 더 뛸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다세대 연립 빌라 전세 사기 피해로 아파트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 반면 공사비 급등에 공급은 원활하지 못해 무주택 서민들의 불안 가중은 끝이 보이질 않고 있다.
그런데도 추세적 상승은 아니란 게 정부 입장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월 11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 식당에서 진행된 국토교통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부동산 시장은 기본적으로 항상 변하기 마련”이라며 “지엽적이고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잔 등락”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나 인구 문제 등을 볼 때 집값 급등 가능성은 적고 3기 신도시 등 상당한 공급도 예정돼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일부 지역의 상승은 금융 장세 성격이 강한데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로 힘을 못 쓸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하지만 “공급은 충분하고 집값은 오르지 않을 것”이란 지난 정부의 데자뷰(Deja vu │ 이미 본)같은 기시감(旣視感)이 앞선다.
올해 7월 들어 날씨만큼 유난히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있어 올여름이 무척이나 습하고 무덥다.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이달 들어 나흘 만에 2조 원 이상 느는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 주택 가격 상승과 금리 인하 기대로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주식 빚투(빚내서 투자)’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이달 들어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 총액이 710조 7,558억 원으로 지난 6월 말 708조 5,723억 원보다 불과 4영업일 만에 무려 0.31%인 2조 1,835억 원이나 급증했다. 게다가 7월 1주 차 서울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0.2%를 기록하며 2년 9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가계대출과 부동산가격이 동시에 ‘위험 수위’를 치닫고 고공비행하고 있는 모양 세다.
이러한 기저에는 최근 부동산 경기 회복 조짐, 금리 인하 기대심리 그리고 증시 활황과 함께 꿈틀대기 시작한 ‘주식 빚투’가 배경으로 지목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금융위원회가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시기를 9월로 연기하는 바람에 대출을 미리 받아두자는 ‘대출 막차’ 수요까지 몰리고 있다.
이달 첫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2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고 매수 수요는 2년 8개월 만에 공급을 앞질렀다. 따라서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전세대출·중도금대출·정책금융 등도 DSR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극약처방(劇藥處方)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당연히 서민과 실수요자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앞으로 가계 부채를 줄이겠다”라는 확실하고 일관되고 통일된 메시지(Message)나 시그널(Signal)이라도 꾸준히 내보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서민들의 대표적 내 집 마련 수단인 아파트 청약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어 혼란을 주고 있음을 인식하고 명찰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서도 지난 2년 새 무려 35차례나 변경됐다. 그야말로 조변석개(朝變夕改 │ 아침에는 변경되고 저녁에는 수정됨)와 조령모개(朝令暮改 │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침)의 전형(基本特征)이 아닐 수 없다.
투기 차단이나 특별공급 확대 등 정권마다 부동산 정책이 바뀌면 청약제도부터 가위질하기 때문이다. 제도가 너무 복잡해져 청약통장 가입자는 물론 담당 공무원도 헷갈릴 지경이다. 당첨되고도 자격 조건이 맞지 않아 탈락하는 부적격자가 속출하고 있다. 더는 무주택자가 피해당하지 않도록 누더기가 된 청약제도를 이해하기 쉽고 단순하게 개편하고 획기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
주택청약제도는 1977년 8월 18일 「국민주택 우선 공급에 관한 규칙(주택공급규칙)」을 신설하면서 도입됐다. 처음에는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아 건설되는 공공주택에 적용되었으나, 이듬해 민영주택에도 청약제도를 적용하면서 현재 청약제도의 모태가 되었다.
초기에는 무주택 가구주가 일정 기간 청약 부금·예금에 가입하면 1순위 자격을 주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였지만 2000년대 들어 주택 시장이 회복되자 청약 규제가 다시 강화되었고, 2002년 투기과열지구 제도를 재도입하였으며 2003년 투기과열지구 내 전매제한을 강화하였다.
2004년엔 전용 85㎡ 이하 민간 아파트의 75%를 무주택 세대주에게 우선 공급하도록 하고, 이듬해에는 공공택지 내 전용 85㎡ 이하 민간 아파트의 75%를 무주택 세대주에게 우선 공급하도록 확대하였으며, 전매제한도 조건에 따라 최장 5년으로, 재당첨 금지 기간도 조건에 따라 최장 10년으로 늘어났다.
2006년에는 최장 10년까지 전매를 제한토록 했고, 2007년 9월에는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 공급을 위해 청약가점제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무주택·통장 가입 기간과 가족 수를 점수화한 청약가점제와 추첨제가 도입되더니 최근엔 청년·신생아 등 특별공급이 하나둘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공공 분양주택을 나눔형, 일반형, 선택형 등 유형을 나누고 소득 기준도 까다로워졌다. 제도가 이렇게 복잡해진 데는 공급 확대보다 청약 규제를 통해 집값을 잡으려 했던 정책 실패도 심각한 이유로 지적된다. 정권별로 「주택 공급 규칙」을 개정한 횟수만 봐도 얼마나 까다롭고 복잡해졌는지 금방 이해된다.
이명박 정부 47회, 박근혜 정부 37회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는 무려 65차례나 개정했다. 연이은 3개 정부에서 무려 149회에 걸친 개정이 이뤄져 얼마나 누더기가 되었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주택 공급은 급감하는데 청약제도만 자꾸 바꾸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일례로 장기간 청약가점제를 준비해온 무주택자는 특별·우선 공급 확대로 당첨 가능성이 졸지에 확 낮아졌다.
이처럼 주택청약제도가 ‘난수표’처럼 복잡해지고 ‘누더기’로 급변하면서 부적격 당첨자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 등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4년 새 제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당첨이 취소된 부적격자도 무려 6만 177명에 달했다. 2020년 청약홈 사이트 개편 후 본인 가점 계산을 도와주는 시스템이 나왔지만 부적격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외려 계속 늘어나고 있다.
주택청약제도를 개편하고 바로잡는 근본 목적은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평과 결과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청약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고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주택청약제도가 너무 까다로워지면서 누구나 부적격 청약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청약 부적격자가 되면 수도권이나 투기·청약 과열 지구에는 1년, 다른 지역에는 최대 6개월간 청약 기회가 제한된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내 집 마련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의 실현을 위한 희망에 찬 몸부림’이 까다롭고 복잡해진 제도의 미비로 그 절박한 심정에 대못을 박고 찬물을 끼얹는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독소(毒物)적 해악(害惡)이 결단코 아닐 수 없다.
실제로 2021년 7월 시행한 3기 신도시 1차 사전청약에서는 최초 당첨자 4,333명 가운데 11.37%인 493명이나 부적격 당첨자로 처리됐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공급한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3단지 ‘반값 아파트’ 1차 사전청약의 최종 당첨자를 지난해 7월 26일 발표했는데 최종 확정된 당첨자는 총 377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당첨자 500명 가운데서 제외된 163명 중 160명(32%)이 부적격자로 판명돼 당첨이 취소됐는데, ▷서류 미제출 52명, ▷서류는 제출했으나 자격 결격 4명, ▷소명에 아예 응하지 않은 미소명 104명 등이었고, 나머지 3명(0.6%)은 청약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덕강일3단지 ‘반값 아파트’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으로 토지는 수(授 │ 주는) 분양자인 공공이 소유하고 지상의 건축물은 수(受 │ 받는) 분양자가 소유하는 공공분양주택으로 40년간 거주한 뒤 재계약을 통해 최장 80년까지 거주할 수 있었다. 전용면적 49㎡의 추정분양가는 약 3억 1,400만 원이며 추정 토지임대료는 월 35만 원으로 책정됐다.
시세 반값 수준으로 매수할 수 있어 주택 구입 초기자금이 부족한 무주택자들의 자가 소유를 보장하는 ‘주거 사다리’로 여겨져 지난해 2월 공급 당시 500가구 모집에 약 2만 명이 지원하며 평균 40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됐다. 특별공급은 33대 1, 일반공급은 6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으며 청년 특별공급의 경우 118대 1로 경쟁이 가장 치열했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도 10명 중 3명은 계약하지 못하게 된 상황은 이를 방증(傍證)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7월 1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이후 청약제도는 35차례 변경됐다. 「주택법」 제54조(주택의 공급) 등에 따라 주택 및 복리시설을 공급하는 조건ㆍ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13번, 공공주택의 원활한 건설과 효과적인 운영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공공주택 특별법」은 10번, 「공공주택 특별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도 12번 바뀌었다. 특히 현 정부는 청년층의 당첨 기회를 늘리겠다며 지속해서 청약제도를 지속 손보고 있다. 2년 전에는 공공분양에서 청년 특별공급을 만들고, 공공과 민영 모두 추첨제를 확대했다. 올해 초에는 신생아 특별공급을 신설하고, 민간 분양에 신생아 우선 공급을 도입했다.
물론 주택의 원활한 공급과 꼭 필요한 계층과 수요에 유연하고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의지와 노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2년 전에는 공공분양에서 청년 특별공급을 만들고, 공공과 민영 모두 추첨제를 확대했다. 올해 초에는 신생아 특별공급을 신설하고, 민간 분양에 신생아 우선 공급을 도입했다.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달엔 ‘저출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공공분양 일반공급 절반을 신생아 가구에 우선 공급하기로 하는 식으로 신생아 물량을 늘렸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는 동안 청약 경쟁률은 끝없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청약제도에 대한 실망으로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감소세도 심각하다. 2022년 6월 2,703만 1,911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 내림세를 보이면서 올 5월 말에는 2,554만 3,804명으로 2년 새 5.5%인 148만 8,107명 가량 줄었다. 이런 가운데 주택 공급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전국 주택 착공 물량은 20만 9,000가구로 최근 18년간 연평균(2005~2022년)의 47.3%에 그쳤다. 인허가는 39만 9,000가구로 연평균의 74.2%, 준공은 31만 6,000가구로 73.9%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해들어 5월까지 공공분양 인허가 실적은 단 한 건도 없다. 공공분양실적이 5개월 이상 전무(全無)한 것은 2018년(1~9월) 9개월 이후 처음이다.
일반공급을 기다리며 오랜 기간 점수를 쌓아온 수요자들은 “청약의 희망이 없다”라고 좌절하고 탄식하며 눈물만 흘리고 있다. 공공분양 일반공급은 청약저축 총액 순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납부 횟수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청약제도가 계속 개편되면서 일반공급 물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주택청약제도의 원칙도 방향도 없어 보인다.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따라 포퓰리즘(Populism)에 편승하여 이뤄지는 청약 개편이 오히려 무주택자들에게 청약을 포기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양상으로 보인다.
주택청약제도의 잦은 변경은 ‘내 집 마련’의 ‘예측 가능성’에 혼돈을 가져오고 ‘기대 가능성’마저 송두리째 흔들 뿐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피해자를 양산할 우려가 크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신중(愼重)하고 진중(鎭重)해야 한다. 수요에 따라 주택 공급은 늘리지 않고 손쉬운 주택청약제도만 바꾸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뿐더러 사실상 공무원의 직무유기다. 다른 무주택자에게 가야 할 몫을 줄이고, 특별공급 물량을 늘려 마치 공급이 늘어난 것 같이 호도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무택자들 사이에 갈등만 조장하는 주택청약제도를 차제에 획기적으로 대폭 단순화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