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초고층 고집, 상징성 있지만 사업성 우려도
"동시다발적 사업 추진 위험···선택과 집중 있어야"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서울시가 '디자인 서울, 랜드마크 배치'라는 방향성과 '과욕, 예산 낭비'라는 비판 사이를 오가고 있다.
오 시장은 첫 당선 임기가 시작된 지난 2006년부터 디자인 서울특별시 정책 일환으로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고척스카이돔·세빛섬·롯데타워 등을 추진해 성공했고, 2022년 재취임 후에도 인상적인 랜드마크급 조형물·건축물 배치에 공들이고 있다.
하지만 대형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 및 인력 문제를 비롯해 난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와 향후 관리 부실 우려 등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광화문 상징물'···의견 수렴 나섰지만 '예산 낭비' 비판 여전
20일 서울시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광화문광장 국가상징공간(조형물) 조성' 문제와 관련해 기존 100미터(m) 높이 국기 게양대 설치를 포함해 무궁화·애국가·복합 조형물 등 자유민주주의와 인류 평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겠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광화문광장 인근에 국기 게양대가 있고 기존 상징물로도 역사성이 충분한 만큼 정책·예산의 우선순위를 고려한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진 데 따른 선회 움직임이다.
서울시는 이 외에도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이라는 시정 목표에 따라 시내 곳곳에서 랜드마크급 건축물 설치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여의도공원 잔디광장에 계류식 가스기구인 '서울달'을 공개했다. 130미터 높이에서 한강과 도심 스카이라인을 조망하는 시설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대에 세계 최대 고리형 대관람차를 목표로 추진 중인 '서울링'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및 제안서 접수·평가 등이 임박한 상황이다. 현재 목표대로라면 2년 내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접수된 민간 제안서를 보면, 서울 월드컵공원 내 평화의공원에 두 개의 링 구조물이 교차하는 형태로 들어서고, 사업비 약 9100억원이 투입된다.
지난 2일에는 서울 최초 K-POP 중심 복합문화시설인 '서울 아레나' 착공식이 도봉구 창동 일원에서 열렸다. 또 '도시건축디자인 혁신 1호' 사업으로 성동구 옛 이마트 부지에 대한 도시관리계획을 결정·고시하고 E-스포츠를 비롯해 행사·전시·공연·도심 조망이 가능한 '케이프로젝트(K-Project) 복합문화시설' 추진을 확정했다.
서울시는 이곳을 포함해 작년에 '제1차 도시 건축 디자인 혁신 사업' 대상지 10곳을 선정한 데 이어 지난 5월 △서울 플레이그라운드(Seoul Playground·서초구 서초동) △어 주얼 포 서울(A jewel for seoul·강남구 압구정동) △심바이오시스(Symbiosis·용산구 한강로2가) 등 6곳을 추가해 총 16곳에서 디자인 혁신 사업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대형사업 초고층 고집···사업성·민자 유치 등 난관 봉착
이렇듯 오세훈표 서울 랜드마크 사업은 대체로 순항하는 듯 보이지만, 시공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주요 사업들은 사업성 문제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우선 2004년부터 진행된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 추진 계획은 3년여 간 용지 매각만 6번이나 유찰되는 등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사실상 무산됐다.
강남구 삼성동 옛 한전 부지에 추진 중인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 사업의 경우, 시공 주체인 현대차그룹이 최근 치솟은 공사비와 사업성 우려를 내세워 초고층(105층) 대신 55층 2개 동으로 설계 변경을 요청했지만, 서울시가 원안 유지 또는 공공기여액 등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현재 착공 후 4년이 흘렀지만 공정률은 5%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가 용산정비창 부지에 100층 랜드마크로 추진 중인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당초 발표에 따르면 일대 개발을 위해선 공공이 14조3000억원, 민간이 36조8000억원 가량을 투자해야 하는데 공사비 급등과 건설 경기 침체로 투자비 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8조9000억원인 국공유지 땅값 제외하더라도 공공에서 기반시설 조성을 위해 투입해야 할 자금만 5조4000억원에 달한다. 서울시는 SH공사에서 회사채를 발행해 약 3조원을 투입하고, 토지 분양 대금으로 충당할 예정이지만 토지 분양률이 미지수다.
이러한 우려가 커지자 서울시가 곳곳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사업을 추진 할 게 아니라 사업성을 깊이 판단해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선 글로벌 추세에 맞는 랜드마크급 건축물이 필요한 건 맞다"면서도 "최근 국내외 경제 상황과 건설·부동산 경기 등으로 미뤄볼 때 시내 여러 곳에 계획과 예산 등을 분산하기보다 한두 곳에 관련 역량을 집중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초고층은 전망이나 상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오피스로써 효용성은 떨어질 수 있다"며 "건축비가 많이 들고 대피층 등 안전 보강이 필요할뿐 아니라 두꺼운 구조 탓에 내부 활용 공간이 줄어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