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 일성 속 계엄 카드 꺼냈지만 6시간 만에 백기투항
계엄 선포 요건, 국무회의 심의 절차 등 계엄법 위반 소지...野 탄핵 빌미 제공
매일일보 = 정두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 일성 아래 비상계엄 선포라는 벼랑끝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지난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발령된 이번 초유의 계엄 사태는 불과 6시간 만에 국회의 저지로 무산됐다.
'6시간 천하'로 막을 내린 이번 계엄 사태는 현직 대통령이 정권 조기 종식을 자초한 정치 흑역사로 기록될 수 있다는 평가다. 돌발적인 계엄 선포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전방위적 후유증이 예상되는 데다, 윤 대통령의 계엄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거대한 후폭풍이 불가피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1시경 긴급 대국민 담화를 내고 거야(巨野)의 입법 폭거와 행정·사정 고위직 줄탄핵 등으로 국정이 마비된 지경에 이르렀다며, 이러한 야당을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하려는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밝혔다.
이에 국회는 이튿날 새벽 긴급 본회의를 열고 계엄 해제 결의안을 재석 190석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친한(친한동훈)계 등 국민의힘 의원 18명도 동참했다.
본회의 가결 후에도 3시간여 대통령실과 국회의 대치가 이어졌으나, 새벽 5시를 넘긴 시각에 윤 대통령이 긴급 회견을 통해 국회 계엄해제 요구를 수용한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일단락됐다. 전날 밤 긴급 대국민 담화로 계엄령을 선포한지 6시간 만이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에 더해 거대 야권의 전방위 공세까지 이어지자 더이상 원활한 국정 전개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이같은 극단적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계엄 취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결여와 절차적 위법 소지에 윤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거대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실제 이날 계엄 해지와 동시에 용산을 향한 야권발 탄핵 물결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즉각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동 발의해 내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당대표와 민주당 의원 일동은 이날 오전 결의문을 내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그 어떤 선포 요건도 지키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원천무효이고, 중대한 헌법 위반이자, 법률 위반이다. 이는 엄중한 내란 행위이자, 완벽한 탄핵 사유"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윤 대통령의 헌정파괴 범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윤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날 오전 비공개 당 지도부 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탈당과 국무위원, 용산 참모진 총사퇴를 촉구하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나아가 여야 지도부는 현재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해 물밑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 대통령 계엄 선포에 단호한 모습이다. 그는 전날 계엄 선포 소식에 즉각 "위헌, 위법"이라 선을 그으며 용산에 계엄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의 이번 비상계엄은 '국면 대반전'이라는 취지와 정반대로, 야권에 오히려 법률상 탄핵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거대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현행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결국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관련 법 위반 소지가 있는 데다, 계엄 거부권이 있는 입법부 통제로 헌정질서를 혼란케 했다는 비판에도 노출돼 탄핵 직격탄을 맞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탄핵 수모를 겪기에 앞서 선제적으로 하야 의사를 밝힐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이미 이날 오전 정진석 대통령실비서실장 등 고위 참모진들은 이번 사태로 일괄 사퇴를 자처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에 계엄을 제안한 김용현 국방장관을 비롯한 내각 고위급 인사들도 곧 거취를 결정할 전망이다.
한편 이번 사태는 헌정사상 10번째 비상계엄 사례로,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로 발발한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이다. 현재 외신들은 일제히 윤 대통령의 입지가 위태롭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초유의 사태에 충격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