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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 안영(晏嬰)이 사신으로 초(楚)나라 영왕(靈王)을 알현했다. 영왕은 제나라 출신 도적을 잡아다 “제나라 사람은 원래 훔치기를 잘 하는 모양”이라고 비아냥대며 안영을 망신 주려 했다. 안영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수(淮水) 남쪽에다 심으면 귤이 달리는 귤나무도 회수 북쪽에다 옮겨 심으면 탱자가 달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회수 이남과 이북의 땅과 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은 도적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초나라에 온 뒤로 도적이 되었으니 초나라 풍토가 사람을 도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른바 귤화위지(橘化爲枳) 고사다. 사람도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성질이 바뀐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여의도발(發) 막말 논란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 매년 발생하던 국감장에서의 거친 말 논란이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심기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 정도 수준인 사람을 국민의 대표하고 뽑아 혈세로 세비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매년 반복되는 것은 우리 국격(國格)을 훼손시킬 뿐이다.의사일정 합의도 없이 불러놓고 무조건 기다리게 하는 행태도 매년 반복된다. 의사일정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여야 간에 말꼬리 잡다 감정싸움으로 번져 파행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국정 수행에 바쁜 고위 공무원들을 줄줄이 대기하게 해놓고 자기들끼리 기세 싸움만 하는 행태 역시 익숙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놓고 국정 난맥상을 질타한다고 하니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쌓여가는 것이다.올해 국감에서는 여당 의원에 의해 청와대 외교안보팀이 졸지에 ‘얼라(어린아이의 경상도 사투리)’가 되기도 했다. 그 순간 ‘얼라’ 같은 청와대 외교안보팀에 국가의 명운을 맡긴 국민들은 ‘얼라’보다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얼라(?)’ 같은 정부를 질타하는 자신에 대해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의문이다. ‘얼라’를 야단치는 ‘유치원 보모’ 같다는 냉소마저 나오는 것을 알기나 할까.국회의원들의 막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래전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냈던 한 의원은 국회에 출석한 정몽구 회장에게 반말로 질타하다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몽준 의원으로부터 “반말하지 말라”는 면박을 받자 바로 말을 바꿔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국회의원들은 마치 스스로가 잘나서 배지를 달았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들의 설화(舌禍)가 잦아들지 않는 이유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150일 넘도록 놀다가 이제 겨우 일하겠다고 나선 꼴 아닌가. 코앞에 닥친 시험 앞두고 벼락치기 하겠다는 수험생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 피 같은 세금으로 뒷바라지를 하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얼라’ 같은 행동일 뿐이다.국회의원들은 배지를 달기 전에는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사들이었을 것이다. 그랬으니 공천 받았을 게 아닌가. 그럼에도 배지만 달면 어찌 국민들로부터 조롱받는 수준으로 전락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여의도를 휘감고 흐르는 한강이 회수라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여의도 풍토가 귤나무에 탱자가 달리게 하는 것일까.마침 새정치민주연합이 우윤근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우 원내대표는 ‘품격 있는 야당’을 추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화답하듯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 폄하 메모에 대해 사과했다.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면 소통이 가능해진다. 모쪼록 국민들이 국회를 ‘얼라들이 노는 유치원(?)’ 쯤으로 여기지 않도록 품격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