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황동진 기자] 다사다난했던 2009년이었다. 미국발 금융한파가 몰아친 가운데, 서민 경제는 바닥을 쳤다. 정부는 경제 안정화를 위해, 각종 정책을 펼쳐냈다. 기업들 또한 정부정책에 대부분 동참하려 했다. 특히 구조조정과 일자리 창출 그리고 잡셰어링 정책을 통해 고용안정화에 힘썼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의 이런 노력만 가지고선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어디까지나 친기업 정책이었고, 기업들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시늉만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더 이상 분노 게이지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간간히 들려오는 재벌가의 뉴스 때문. 서민들은 재벌 역시 자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수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상대적 위안이 됐다. 이에 <매일일보>이 서민들을 위안케 한 국내 10대 재벌가를 중심으로 올 한해 일어났던 별의별 뉴스를 모아봤다.
1위. [삼성가] 황태자는 이혼했지만 법적 족쇄 풀어 올 초 삼성가 황태자인 이재용 부사장의 이혼 소식에 온 재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상가 장녀 임세령씨와의 결혼 10년만에 파경을 맞은 것이었으니 당연히 놀라울 법했다. 당시 임씨는 이 부사장을 상대로 재산분할청구소송까지 제기했으나, 어찌된 영문이지 협의 이혼하는 선에서 맥없이 일단락 나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 간 이혼 원인에 대해선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어 세간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때 재계 일각에서는 이 부사장의 이혼으로 인해 자칫 삼성가의 후계구도에 큰 변화가 일 것이란 시각도 존재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이혼 후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최근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해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올 한해 삼성가에서는 불행만 있었던 건 아니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했던가. 13년 동안 삼성의 발목을 묶었던 경영권 편법 논란에 대한 법적종지부를 지었다. 그리고 이건희 전 회장의 특별사면으로 ‘황제의 리턴설’이 탄력을 받고 있다. 2위. [현대가] 잃어버린 옛영광을 찾아 본격 시동 왕자의 난 그리고 시숙의 난을 겪으며 뿔뿔이 흩어졌던 현대가가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최근 재계에서는 현대가에서 비운의 2세로 불리는 정몽혁씨가 현대중공업이 인수한 현대상사 대표이사 회장으로 전격 선임됨에 따라 향후 현대가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3위. [SK가] 사촌간 계열사 분리설 ‘모락모락' 올 한해 SK가는 계열사 분리설 때문에 진땀을 뺐다. 분리설의 핵심은 고 최종현 회장(2대 회장)의 아들들인 최태원-재원 형제와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창업 회장)의 아들들인 최신원-창원 형제간의 계열 분리가 일어날 것이란 거다. 4위. [LG가] 황태자 결혼 후 경영권 승계 본격화 5위. [롯데가] 왕회장 꿈에 그리던 소원성취했지만 전국은 잡음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꿈에 그리던 소원이 마침내 이뤄졌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제2롯데월드 건설이 신 회장이 그렇게도 갈망하던 소원이었다. 제2롯데월드 건설은 수 년 동안 각종 의혹과 반발에 부딪혀 좌절돼왔지만, 올해 정부가 뒤로 한발짝 양보함에 따라 급물살을 탔다. 또, 롯데는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M&A시장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두산그룹의 주류부문을 인수해 주류업계 시장 재패를 선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눈부신 성과에 못지않게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롯데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건설계획 중인 골프장 건립사업은 환경단체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인천 계양산 골프장 건설의 경우 최근 지역 환경단체가 롯데건설이 임목축척조사서를 허위로 작성보고했다며 의혹을 제기해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6위. [GS가] 지난해 대우조선인수전 포스코 배신 불명예 딛고 쇄신 LG가에서 분리된 허씨 일가의 GS가는 지난 2008년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올 한해 동분서주했다. 지난 2008년 말 대우조선인수전 당시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키로 해놓고는 막판에 배신, 인수가 가장 유력했던 포스코를 물 먹였던 GS였다. 때문에 당시 GS를 향한 재계의 비난이 쇄도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결과적으로 당시 발을 뺀 게 오히려 잘한 일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7위. [금호가] 대우건설 인수 불화로 형제의 난 결국 왕회장 물러나 금호가는 올 한해 가장 큰 격변을 겪었다. M&A시장의 최대어였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을 잇달아 집어삼키며 일약 M&A 시장의 최강자로 부상한 금호였다. 하지만 금호 역시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이다. 결국 대우건설을 도로 토해내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수치는 이로인해 형제간 불화의 씨앗이 싹텄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현대상사인수전에서 현대중공업 외에도 STX등이 관심을 보였으나, STX는 현대중공업이 현대가의 옛계열사를 다시 찾는다고 하여 자진 물러났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앞으로 현대가는 과거 뿔뿔이 흩어졌던 현대가의 옛 계열사를 하나씩 인수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현대오일뱅크와 현대건설은 현대가의 사정권역에 들어온 지 오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가가 다시 잃어버린 옛 현대의 영광을 찾기 위한 시동을 걸은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편, 올 한해 현대가는 현대가의 맏며느리이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부인 이정화 여사가 췌장암으로 별세해 깊은 슬픔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도 잠시 최근 정몽윤 현대해상보험 회장의 딸 정이씨와 김인규 KBS 사장의 장남 현강씨가 화촉을 밝혀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다.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의 별세 이후 그의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그룹경영을 맡아오다 최종현 회장마저 별세하면서 그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의 경영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창업주의 장남이나 SK일가의 장손인 최신원 회장이 가만히 앉아있지만은 않을 것이란 게 재계의 시각이다.
실제 이들 SK일가는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이후, 최태원-재원 형제가 그룹의 중심 경영을 맡고, 최신원-창원 형제가 계열사를 맡아 경영하는 등 사실상 한 그룹 안에 존재하긴 하지만 독립경영 형태의 모습을 보여 왔다. 이를 증명하듯 이들 SK일가는 지난 2003년부터 꾸준히 지분 정리 작업을 벌여왔다.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공식적인 분가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들 오너 사촌형제 간의 분가는 마무리 단계라는 게 재계 일각의 시각이다.
한때 이로 인해 허창수 회장의 경영능력까지 의심하는 눈초리가 생기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오히려 능력을 새삼 인정받게 된 셈이다.
한편, GS가는 그동안 LG가에 분리된 이후 서로간 중복되는 사업군에서 경쟁을 피해왔지만, LG의 건설업 진출설로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GS가와 LG가가 맺은 신사협정이 깨진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박삼구 전 회장의 친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전 회장 일가가 지분을 확대인수하고 나서면서 이들 간 형제의 난이 촉발됐다. 결국 박 회장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으며, 동생은 사임시켜버렸다. 하지만, 이들 형제의 난을 촉발시킨 근본적 원인이 됐던 대우건설은 M&A시장에 다시 나왔음에도 재매각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 금호는 유동성 위기에 좀 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주력계열사인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을 앞두고 있다.
8위. [한진가] 조양호 회장 자녀들 지주사 정석기업 지분매입 ‘후계구도 착착’
한진가는 올 한해 큰 별탈없이 한해를 마무리했다. 올 한해 한진가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라면 조양호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구도 부분이다. 조 회장의 슬하에는 1남2녀가 있는데, 최근 이들은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정석기업의 지분을 매입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9위. [두산가] 새로운 그룹 변모 갖췄지만, 형제의 난으로 마무리 그동안 ‘밥캣 인수’등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시달려온 두산은 롯데에 주류부문을 매각함으로써, 일단 고비에서 벗어났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두산은 중장비ㆍ건설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10위. [한화가] 소송으로 허송세월 보낸 승부사, 다시 낚시질 한화는 올 한해 산업은행과의 수천억원이 걸린 계약금 쟁탈전으로 소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8년 대우조선인수전 당시 막판에 극적인 반전드라마를 연출하며 M&A 시장의 월척을 낚은 한화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이내 승자의 저주에 걸리는 비운을 맞았다. 배보다 배꼽이 큰 인수였던 것.하지만 이 후 더 큰 문제는 대우조선의 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과의 이행보증금. 보증금액만 무려 3150억원. 한화로선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마당에 3천억원이란 거액을 고스란히 산업은행에 빼앗길 처지에 놓였다. 산업은행은 정당한 계약이었다고 절차상 문제가 없었으므로 돌려주지 못한다고 맞섰다. 이로 인해 한화는 소송까지 불사해야만 했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법정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석기업이 한진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격인 만큼 창업주 고(故) 조중훈 회장, 맏아들 조 회장에 이은 후계 경영권 승계 기반을 갖춰놓기 위한 포석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놓고 봤을 때, 반드시 장자인 조원태 상무에게로 승계되리란 장담은 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조 상무의 누나인 조현아 상무와 동생인 조현민 팀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조 상무와 비교해 거의 엇비슷한 수준이기 때문. 더구나 이들 모두 그룹 내에서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어 어느 누가 대권을 손에 쥐게 될 지는 좀 더 추이를 지켜봐야할 듯 하다.
한편, 최근 계열분리를 두고 조양호 회장과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 간의 갈등설이 점화되고 있어 이목을 끌고 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을 그룹에서 분리할 수 없다고 의사를 밝힌 반면 최 회장은 계열분리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 최근 최 회장은 한진해운 자사주 매각을 통해 우호지분을 늘리고, 그룹의 지주사격 회사인 정석기업 보유지분도 전량 매각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진가 형제들간 자산분쟁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또, 두산은 사학명문인 중앙대를 인수하며 학원사업까지 진출해, 새로운 그룹의 변모를 갖추는 원년으로 삼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안정화된 모습을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큰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지난 11월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것. 고 박 전 회장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두산그룹의 총수를 지냈지만 2005년 형제간 갈등 끝에 그룹의 비리를 검찰에 투서하는 등 ‘형제의 난’을 겪은 뒤 두산가에서 제명됐다. 이후 중견 건설업체인 성지건설을 인수하면서 경영에 복귀했지만 부동산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자금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전 회장의 자살 원인을 ‘형제의 난’에서 찾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경찰 조사에서 나온 박 전 회장이 남긴 A4용지 7장 분량의 유서에는 자신과 함께 두산가에서 배제됐던 자신의 두 아들을 다시 가족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한편,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좌절 이후 잉여 유동성을 바탕으로 잠재 인수기업을 물색하고 있다.
이런식으로 비교를하면 무얼 비교해도 비참해질뿐인 것은 서민들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