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사유(思惟)하지 않은 정책으로는 공감 얻기 어려워복지가 우리 사회의 시대적 화두(話頭)가 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올해보다 5.7% 늘어난 376조원 규모이다. 이 가운데 복지 관련 부문에 30% 이상을 쓴다는 계획이다. 금액으로는 115조원이 넘는다. 금액으로나 비중으로나 사상 최대 규모이다. 비록 재정적자가 커지고는 있지만 사회적 약자의 생활 안정 등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겠다는 것인 만큼 사회적 불평등 해소 차원에서라도 막을 일은 아니다.
이러한 가운데 한편에서는 내년도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에 대해서는 정부 예산을 투입하겠지만 무상급식은 지자체와 교육청이 부담하라는 게 시비의 요지다. 이러다 보니 이 사업들을 당초 누가 추진했느냐를 놓고 여야가 얼굴까지 붉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도 가세해 정부가 예산을 더 많이 배정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 문제의 본질은 한마디로 돈이 없다는 것이다. 한정된 정부 예산으로 모든 복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복지 욕구는 아직도 우리가 감당하기 벅찬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해 저출산을 막자는 정책까지 가세했다. 그러자 예산이 부족해 그동안 추진해왔던 무상급식조차 어려운 마당에 새로운 무상복지가 더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여론이 제기됐다.애당초 이러한 각종 복지 관련 정책이나 공약은 예산을 감안하지 않고 만든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예산 낭비 요소를 철저히 막으면 증세 없이도 가능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국민들도 그것이 현실과는 유리된 정치인의 수사(修辭)라는 걸 알기는 했다. 그래도 달콤한 사탕발림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단 옷을 입힌 당의정(糖衣錠)이 입안에서 녹자 곧바로 쓴 약이 드러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정부의 정책이나 정당의 공약은 반드시 비용을 수반한다. 비용은 예산으로 반영돼 나타나며, 이는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조달되어진다.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산에 대한 치밀한 검토 없는 정책이나 공약은 곧바로 국민에게 새로운 청구서를 요구하기 마련인 것이다. 강력한 복지는 강력한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복지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새로운 영수증을 발급하겠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세상사 이치다.어떤 정책이든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친다. 그런데 전문가 의견이 만능은 아니다. 여든 야든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없어서 글로벌 경제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도 정치권이 전문가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이것이 국민을 설득하는데 용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보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몰두할 때 국민 삶은 위기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선 정치권에도 사유(思惟)의 문화가 확장되어야 한다. 즉흥적이거나 얄팍한 생각으로는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우리는 흔히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며 산다. 그러나 나무보다 숲을 보는 거시적 안목도 중요하다. 특히 정치인에게는 더욱 그렇다.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은 삶의 현장 전체를 봐야 나올 수 있다. 한 단면만 보고 만든 정책은 피상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람 사는 세상을 깊이 있게 사유해 발굴한 정책은 그 깊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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