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김경탁 기자] “2009년 1월 16일 발표된 삼성 사장단 인사안은 삼성 조직의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비리에 가담해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큰 보상이 돌아갔다. 반면, 삼성을 지금처럼 키우는 데 기여한 이들은 밀려났다…”
- 김용철 변호,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 『삼성을 생각한다』 표지 -
<매일일보>은 이 사건과 관련해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천재경영’이 ‘이재용 시대 준비’에 밀려 위기를 맞았다고 분석․보도한 바 있는데,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증언이 나왔다.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삼성 비리’ 고발의 주인공인 변호사 김용철의 책이 출간되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이 책은 ‘변호사 김용철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카피를 달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정가 2만2000원)를 알리기 위해 출판사가 준비한 신문광고의 홍보카피는 “이건희보다 삼성이, 삼성보다 대한민국이 중요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고 가르쳤다”이다.
정가 2만20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에 총 476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페이지 수는 일반 독자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자의 개인적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의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동공확장과 심박수 증가를 동반하는 흥분상태를 겪었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 책 표지 하단에 남긴 글에서 “2009년 1월 16일 발표된 삼성 사장단 인사안은 삼성 조직의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비리에 가담해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큰 보상이 돌아갔다. 반면, 삼성을 지금처럼 키우는 데 기여한 이들은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26일 비극적 죽음을 맞은 삼성펠로우 출신 이원성 부사장의 사태를 예견한 것 같은 글이 표지에 실린 것이다.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삼성에서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저 소모품 취급을 당했다. 다른 곳으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끔 해 놓고 연구기계취급을 했다. 이런 생활을 오래 하고나면, 담당 기술이 아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백치가 된다. 그러다 연구하던 기술의 효용이 떨어지면, 회사에서 쫓겨난다. 다른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질 틈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면 다른 일에 적응하기 어렵다. 철저하게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길들여진 삶을 살다 버려지는 것이다"
"대신 이들의 노력과 희생에 기생하는 집단은 승승장구했다. 삼성에서 연구임원은 임원 취급을 받지 못했다. 비리를 함께 저지르는 경영임원이 돼야만,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 비리 공범을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으로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74p 중에서 -
책 표지에서 김 변호사는 “12년 전 삼성에 입사하던 당시, 내가 기대한 삼성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다”며, “낡은 관행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법조계와 달리, ‘글로벌스탠더드’가 적용되는 조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법에 따라 합리적으로 운용되는 조직에서 경영 업무를 배우고 싶다는 게 내 바람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책 뒷면에서 김 변호사는 “많은 사람들이 재벌의 비리를 공개해봤자 소용없다고 이야기했다”며, “삼성 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 하고 힘이 실렸다”고 회고했다.
김 변호사는 이들이 말하는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거나,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세상살아 가는 지혜(?)에 대해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 변호사는 또한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며,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