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손병희 선생, 횡보 염상섭 선생이 흰 모자를 쓰고 있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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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 손병희 선생, 횡보 염상섭 선생이 흰 모자를 쓰고 있는 까닭은?
  • 매일일보
  • 승인 2006.0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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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고다 공원의 손병희 선생 동상.
눈이 내렸습니다. 간만입니다. 서울에 이렇듯 하얀 눈이 내린 건, 서울에 이렇듯 많은 눈이 내린 건…. 광화문에 나가 보았습니다. 교보생명 빌딩 옆 소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내린 눈이 부담스러운가 봅니다.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이 머리에 흰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두꺼운 갑옷 위에도 흰 옷이 한꺼풀 더 얹혀져 있습니다. 광화문 우체국 정문 바로 앞 인도변엔 눈사람이 세워져 있습니다. 눈도 있고 코도 입도 있습니다. 손에는 아랫면이 빨간 면장갑을 끼었습니다. 점심 시간을 맞아 떼지어 음식점을 향하는 직장인들이 죄다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야…쟤 디게 귀엽다." 종각역 쪽으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흰 나무들에 둘러싸인 보신각이 시야를 가득 메웁니다. 한폭의 풍경화 같습니다. 평소엔 빌딩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그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불거져 들어옵니다.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는 종로 2-3가 경계에 위치한 파고다 공원은 왠일인지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눈싸움을 하기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서울 도심 속에서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보는 이들의 기분이 좋아집니다.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도 머리에 흰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옛날 성현들이 약속이라도 한 모양입니다.

▲ 소설가 횡보 염상섭 선생이 흐뭇한 미소로 서설을 맞습니다.
종로 4가 종묘공원에도 들러보았습니다. 이곳의 주인이신 할아버지들은 모두 팔각정 아래 모여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공원은 흰눈 천지입니다. 소설가 횡보 염상섭 선생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따뜻한 날, 염 선생 의자 옆자리는 할아버지들의 잠자리입니다. 할아버지들은 염 선생의 다리에 머리를 누이고 눈을 감은 채 나른한 오후를 즐기십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닙니다. 그 자리를 흰눈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바로 옆 의자엔 그 눈에 자리를 내준 듯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신문을 깔고 앉아 상념에 빠져 계십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일까요.

종로 5가 6가를 거쳐 동대문에 이르는 길. 저마다 가게 앞 길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분주합니다. 이렇게 봄은 오는가 봅니다. 이번 눈이 올 한 해를 환히 밝혀주는 서설(瑞雪)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서룡 위클리서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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