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보고서…“국내서도 군집행위·경기순응성 확인”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위기가 닥치면 위험자산을 한꺼번에 팔아치우면서 불안을 키우는 행태가 우리나라 기관투자자 사이에서도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경기가 어려우면 대출을 줄이는 은행들의 ‘비올 때 우산 뺏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은행과 다른 자본시장의 특성상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한국은행 금융안정국의 이강원 차장과 이종웅 과장은 22일 내놓은 ‘우리나라 기관투자자의 경기순응성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기관투자자의 유형별로 자산운용 행태를 점검해본 결과 군집행위와 경기순응성이 현저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보험, 연기금, 투자운용사 등이 주를 이루는 기관투자자는 은행과 달리 부채구조가 예측 가능하고 만기가 길어 장기 투자전략을 유지하면서 금융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영미권의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자산투매를 통해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대두됐고,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이런 행태는 국내에서도 다르지 않았다.이 차장과 이 과장이 국내 사례를 분석한 결과, 금융불안기를 전후로 모든 기관투자자들이 동시에 위험자산 투자비중을 확대했다가 축소하는 행태를 반복한 것으로 나타났다.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2008년 4분기에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주식, 위험채권(회사채, 주택저당증권, 머니마켓펀드 등)과 같은 위험자산 비중을 3.8%포인트 줄였다.
특히 투자운용사는 위험자산 비중을 7.2%포인트나 줄여 생보사(-1.5%포인트), 신탁회사(-2.1%포인트), 공적연금(-3.0%포인트)과 대비됐다.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았던 2008∼2009년에는 기관투자자의 위험자산 투자비중 변화가 경기변동과 뚜렷한 정(正)의 상관관계를 갖는 경기순응성을 보이기도 했다.이 기간을 제외하면 경기순응성은 최근 10여년간 뚜렷히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다.경기가 나빠지면 안전자산만 찾고 위험자산은 일제히 내다 판 것이다.이 차장은 “기관 종류별로는 투자운용사, 생보사, 신탁 및 공적연금의 순서로 경기순응성이 높았다”며 “특히 투자운용사의 경우 전 기간에 걸쳐 높은 수준의 경기순응적 투자행태를 보인 반면 공적연금은 경기순응성이 낮았다”고 설명했다.그는 “이런 분석 결과는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큰 자본시장에서 위험선호 성향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투자행태가 급반전할 경우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은행의 경우 경기순응적 행태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바젤은행감독위원회 주도로 내년부터 경기대응완충자본 규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라고 이 차장은 설명했다.이 차장은 “기관투자자의 경기순응성을 줄이려면 단기 성과 위주의 평가방식을 장기로 바꾸는 유인체계를 만들고 자본규제 시 경기순응성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다만 은행과 달리 이런 규제가 기관투자자에 도입될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김욱중 한국은행 안정총괄팀장은 “기관투자자가 경기순응성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모습이기도 하다”며 “이번 조사결과는 우리나라에서도 기관투자자별 경기순응적 행태에 관심을 두고 유의하고 있다는 정도의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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