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삼성전자 산재 피해자 故 연제욱씨 가족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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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인터뷰] 삼성전자 산재 피해자 故 연제욱씨 가족들을 만나다
  • 이한듬 기자
  • 승인 2010.07.16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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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처리 공식 대뜸 들이밀며 ‘몸값’ 계산한 뒤 2억 흥정했다”

[매일일보=이한듬 기자]

지난 12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공공연맹 회의실에서 ‘삼성 산재은폐 규탄 증언대회’가 열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과 삼성일반노동조합 주최로 진행된 이날 증언대회에는 삼성전사 반도체 및 LCD 산업부에서 일하다 백혈병·암 등 각종 희귀질환 및 직업병을 얻은 피해자들과 가족들이 자리했다.

이들은 삼성측이 산재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돈으로 회유했던 경험을 증언하며 산재인정과 삼성측의 진심어린 사과를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대체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매일일보>은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증언대회에 참여했던 삼성전자 산재 피해자 故 연제욱씨의 유족을 직접 만나봤다.

연씨는 지난 2004년 6월 삼성전자 LCD 탐정사업장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입사 4년만인 2008년 2월, ‘종격동암’이라는 희귀성 암 진단을 선고 받고 1년 5개월만인 2009년 7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산재 포기 ‘억대 금액’ 제시에 유족들이 격노한 까닭  

지난 14일 오전. 화성시 동탄에 위치한 故 연제욱씨의 집을 찾았다. 서른평 남짓한 집안은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이 단출하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지만, 가족들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하나 뿐인 아들 연제욱씨가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꼭 1년이 됐기 때문. 연 씨의 어머니 최술연씨는 증언대회가 열렸던 지난 12일이 아들의 음력 기일이었다며 수심 깊은 얼굴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대신해 연씨의 동생 미정씨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삼성 입사 전까지는 잔병치레 한 번 한적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오빠가 갑자기 희귀 암 진단을 받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미정씨의 말에 따르면 연씨는 평소 몸관리를 위해 술·담배를 전혀 입에도 대지 않고 꾸준히 헬스를 하며 건강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2008년 2월 가슴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별일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았던 연씨와 가족들은 의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종격동암’(흉곽의 중앙에 위치한 폐를 제외한 공간에 생기는 종양)이라는 희귀성 암 진단을 받은 것.암 발견 당시 이미 종양의 크기가 너무 커진 탓에 항암치료와 약물로 종양의 크기를 줄여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정자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치료에 앞서 미리 연씨의 정자를 채취하려던 가족은 또 한 번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연씨가 ‘무정자증’ 이었던 것. 그러나 연씨 몸의 이상증세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미정씨가 연씨의 죽음이후 뽑아봤다는 진료 기록에는 연씨가 그 이전부터 꾸준히 병원치료를 받아왔던 기록이 남아있었다. 미정씨가 직접 기자에게 보여준 제법 두터운 서류뭉치에는 연씨가 2004년 6월 삼성전자에 입사하고 난 이후부터 평균 삼일에 한 번 꼴로 병원 치료를 받았던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피부질환, 호흡기 질환, 근골격계 질환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근로복지공단이 공개한 연제욱씨의 산재 불승인 사유
“단순 피곤인 줄 알았더니 병에 걸렸다”

연씨가 회사를 다니면서 가족들에게 고통을 호소하거나 병원을 자주 다닌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머니 최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피곤하다’ ‘힘들다’는 얘기는 했었어요. 가족들 앞에서 코피를 흘린 적도 있었구요. 그렇지만 우리는 아들이 평소에 야근도 자주하고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영어나 일본어 공부를 하니까 단순히 피곤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만 했었죠. 병에 걸려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어요.” 연씨가 종격동암을 선고 받은 이후 가족의 삶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생업조차 포기하고 아들의 병간호에 매달렸고 미정씨는 오빠가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이유를 알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치료비 마련을 위해 빚도 지게 됐다.가족들에게 미안했는지 연씨는 몸 상태가 심하게 좋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원치료만 받으며 계속 회사에 일을 하러 나갔다고 한다. 그 즈음, 낯선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연씨가 가끔식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때마다 가족들이 없는 틈에 찾아와 연씨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를 수상이 여긴 미정씨가 그 사람의 정체를 묻자 연씨는 “인사팀 관계자 김모씨이고, 내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만 하고 돌아간다”는 설명을 했다. 그 관계자라는 사람은 가족들에게는 어떠한 위로나 안부 인사도 묻지 않았다.안정을 취하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회사를 다녔던 연씨는 결국 암 진단 1년 5개월 후인 지난해 7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결국 세상을 떠났고 사랑하는 아들과 오빠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가족들은, 이즈음 연씨의 친구 A(24)씨로부터 가족들이 몰랐던 사실 한가지를 듣게 됐다.A씨에 따르면 연씨는 가끔씩 A씨 앞에서 회사일과 관련된 PPT자료를 정리하곤 했는데, 이때마다 연씨는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유해물질이 누출되면 원인을 밝히고 사고처리를 한 뒤, 그 사건을 PPT자료로 만들어 보고하는 것”이라며 상세한 설명을 해줬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가족들은 지인들을 통해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알게 됐고, 반올림을 찾은 가족들은 관계자로부터 산재신청을 하려면 연씨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한 사항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됐다.“그걸 알아보기 위해서 오빠와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료들을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그런데 약속 당일 그 분들이 약속장소에 나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는 거에요. 나중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는데, 알고보니 오빠가 입원했을 때 병원을 드나들던 인사팀 김모씨였어요. 우리가 오빠 동료들과 약속했던 걸 어떻게 알았는지, 회사가 너무 바빠서 그 사람들은 약속 장소로 나갈 수 없다고, 할 이야기가 있으면 자기한테 하라고 했어요. 일이 끝날 때 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끝까지 안 나오더군요. 물론 나중에는 전화도 안 받았구요.” 이에 어머니 최씨가 삼성전자 인사팀 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일을 하다 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니 산재신청을 받아야 겠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사측은 “산재신청은 반올림이 아닌 회사를 통해 하라”면서 환경안전팀 차장을 담당자라고 소개시켜줬다고 했다. 연씨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자료를 구할 길이 없어 발만 동동 굴리던 가족은 결국 지난 1월, 회사를 통해 산재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3개월이 채 안돼 불승인 통보를 받게 됐다.나중에 반올림 측이 근로복지공단에 요구해 받은 불승인자료집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근로공단측은 삼성측이 제출한 연씨의 근무기록과 LCD 공정 환경자료, 어머니 최씨가 과거 위암 수술을 받았던 전적 등을 토대로 ‘노출기준을 초과하는 유해인자는 검출되지 않았고 연씨의 질병이 유전적 소인일 가능성이 높다’며 산재 불승인 통보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산재공식’ 들이밀며 위로금 흥정
 
“회사가 설마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제출하겠어요? 어떻게 근로공단의 개별적인 역학조사도 없이 회사가 일방적으로 제출한 자료만으로 판단할 수가 있는지 기가막히더군요. 어머니가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있겠다고 다시 차장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랬더니 불승인 사실조차 몰랐다면서 원하는게 뭐냐고 되물었어요. 어머니가 정당한 보상도 받아야겠고 LCD 라인공개를 해달라니까 위에 보고한 후 다시 전화를 주겠다더군요. 이후 5월 3일 전화가 와서 한다는 말이 ‘일이 잘 해결될 것 같으니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어요.”

5월 25일. 삼성 측 환경안전팀과 인사팀 관계자가 직접 집 앞으로 찾아왔다고 했다. 가족들은 그들과 집 안에서 대화하기를 원했으나 이들은 한사코 ‘부담스럽다’고 거절해 결국 밖에서 만나게 됐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미심쩍었단다.“무엇이 그렇게 신경쓰이는지 일식집같이 개별 방이 있거나 밀폐된 구조의 식당만 찾더군요. 커피숍을 들어가도 외지고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으로만 찾았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들은 연씨와 연씨 여자친구의 관계, 가족의 건강 등 집안 사정을 세세하게 캐묻고 돌아갔다.  이후 이틀 뒤인 27일, 이들이 다시 찾아와 대뜸 산재처리 공식을 들이밀더니 연씨의 ‘몸값’을 계산해 2억 정도의 돈을 주겠다며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 물어봤다고 미정씨는 털어놨다. 그런데 시쳇말로 ‘물건가격을 흥정하는 듯한’ 태도에 모욕감을 심하게 느꼈다는 가족들은 이 때문에 “반올림을 통해 산재 재심청구를 하겠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이들은 “반올림을 통해서 해봤자 이정도의 돈을 못받는다”, “소송까지 갈 경우 2~3년이 걸릴텐데 생활은 어쩔거냐”고 생활고를 미끼로 합의를 종용했다고 한다.가족들이 끝까지 거절하자 이들은 재심사 청구 가능기간인 90일이 거의 다 될 무렵인 6월 3일 다시 찾아와 “재심사 청구기간이 마음에 걸리면 일단 회사를 통해 심사청구를 했다가 돈을 받은 뒤 취소하라”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공상처리를 해주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못 박았다. 그럼 대체 그 돈을 왜 주는 것이냐고 묻자 삼성 관계자들은, 가족들의 기억에 따르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제욱씨 병은 겉으로 드러난 게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데 삼성은 초일류 기업이기 때문에 임직원에 대한 성의 표시차원에서 위로금을 드리는 겁니다. 반올림을 통해 산재신청을 하시면 지금 제시하는 돈도 드릴 수 없습니다.”미정씨는 이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병원진료 기록이 남아있음에도 ‘드러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과 ‘삼성은 초 일류 기업이라 성의 차원에서 드리는 돈’이라는 발언에 화가 치밀었다.이들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낀 어머니 최씨가 오열했고, 결국 미정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를 따로 불러 “몇 천 정도를 더 얹어 드릴테니 합의하시라”고 끈질기게 요구해 아버지 역시 “아들의 명예를 찾아야 겠다”며 그들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결국 연씨의 가족은 반올림을 통해 재심사를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연씨에 관련된 이야기가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어머니 최씨에게 삼성전자 인사팀으로부터 전화가 와 “회사를 믿고 하자는 데로 했으면 잘 해결 될 것을 미정씨가 돈도 필요없다고 해서 일이 이렇게 됐다”는 발언을 했다고 미정씨가 설명했다.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미정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연씨의 산재 승인을 위해 끝까지 싸울 의지를 밝혔다.  “삼성이 원하는 건 한가지에요. 회사 이미지에 좋지 못한 소문이 번지는 것을 막는 것. 그래서 산재신청을 못하게 돈으로 피해자 가족을 회유하고 반올림을 만나지 못하게 막는 겁니다. 재심사청구가 불승인 될 것이라는 걸 알아요. 삼성이 제공한 자료로만 모든 걸 판단하는 근로복지공단도 한통속이나 다름없거든요. 그렇지만 소송을 거듭해서라도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래야 오빠의 명예도 찾고, 한 가족을 파탄내고 짓밟은 비인간적인 삼성의 잘못을 알릴 수 있으니까요.”


“삼성은 초일류기업 아닌 초하류기업”

한편, 인터뷰가 끝난 뒤 연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흔적이 머물러있는 집안을 훑어보다가 끝내 오열했다. 한참을 통곡하던 최씨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삼성이 초일류기업? 초일류기업을 만든 게 누군데? 우리 아들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초일류기업 만들다 죽었는데 모른척하고, 이제는 유족까지 다 죽이고. 이게 초일류 기업이 할 짓이야? 초일류기업이 아니라 초하류기업이야, 초하류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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