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정계은퇴 ‘배후’ 있다?
상태바
고건 정계은퇴 ‘배후’ 있다?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7.01.19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출마 선언 배경 두고 정가 ‘설왕설래’…의혹만 무려 ‘10가지’

고건 전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짧은 성명서 한 장을 통해 “역량이 너무나 부족함을 통감한다”며 17대 대선의 무대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언론들은 즉시 ‘갑작스런 불출마로 대권레이스에서 여권후보가…’, ‘갑작스런 낙마는 제3후보의 정치참여를 촉발하는…’ ‘갑작스런 출마포기로 범여권대통합의 한축이 무너져…’ ‘갑작스런 선언에 지지자들은…’ 등의 표현을 써가며 사실상 은퇴선언에 가까운 고 전 총리의 발언이 갑작스런 결정인 것으로 보도했다.

실제로 여.야 대선주자들은 일제히 ‘놀랍다’며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고, 호남의 한 측근은 “호남 민심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당혹스러움을 토로하는 등 차기 대선에서 초대형 변수로 작용할 고 전 총리의 금번 돌출 발언은 ‘당혹스러움과 곤혹스러움’이라는 말로 연초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범여권 지지층의 ‘심리적 기둥’ 역할을 해왔던 고 전 총리의 최측근들 및 선거캠프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갑작스럽게’ 대권 중도포기를 선언한 게 아니라 상당히 오랜 시간 전부터 고민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져 불출마 선언의 ‘진짜’ 배경을 두고 정가의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일단 고 전 총리는 불출마 선언문에서 “일년 가까이 나름대로 상생의 정치를 찾아 전력해왔지만, 저의 활동의 성과가 당초의 기대에 크게 못미친다는 여론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가장 먼저 언급했다. 다른 대선 주자들과 차별화를 통한 전략을 나름대로 고수해왔지만, 저조한 지지도로 대중성을 높이지 못했고 이 점이 불출마 결정의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고 전 총리는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이명박 전 서울시장(21%)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24%)와 함께 ‘3강’으로 불리우며 비슷한 지지율(22%)을 유지해왔고 특히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의 지지층으로부터도 높은 선호도를 기록해왔다.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3강’에서 밀렸고 지지율을 대폭 반등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자신이 추진하는 정계개편 작업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고 전 총리에게 ‘지지율 반전의 기회가 있으니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고 건의했더니 고 전 총리는 사즉생을 떠나 사즉사(死卽死)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전해, 불출마를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지난 2일부터 공식일정을 일절 잡지 않고 정국구상에 돌입했던 고 전 총리는 특히 현재의 조건이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에게 유리한 판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세 배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등 유권자들이 최근 들어 한나라당 지지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에 상당히 불안해던 것으로 알려졌다.

너무나 불안했던 ‘고건’

유권자들의 경우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성향이 대폭 보수화됐는데, 올해 대선까지 북핵문제가 지속될 경우 한나라당 후보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 실제로 북핵사태 이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고 전 총리의 격차는 더욱 멀어졌다.범여권 통합신당의 추진 방향과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논의가 고건 중심에서 조금씩 벗어났던 것도 그의 대선 불출마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 총리는 지난해 11월2일 청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국민대통합신당 창당은 국민의 요구이고, 시대적 요청”이라며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께 창당작업을 본격화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정치권 ‘새판짜기’를 자신이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여권發 ‘선도탈당론’은 이때부터 힘을 얻기 시작했다.그러나 지지율이 갈수록 하락하면서 통합신당의 주요 참석대상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각각 독자적인 정계개편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에 따라 그는 여야 각 정파를 비롯해 정치권 바깥 세력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하는 ‘원탁회의’를 거쳐 오는 3~4월에 국민통합신당을 창당한다는 로드맵을 폐기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한 측근은 이와 관련 “국회의원들은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높았을 때는 50~60명씩 달려들더니, 지지율이 떨어지자 외면했다”고 말했는데, 정치권을 바라보는 고 전 총리의 실망감이 커졌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해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고 전 총리의 핵심 브레인이던 김중수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한림대 총장으로 내정돼 최근 캠프를 이탈한 것도 타격이 컸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 직격탄 맞고 ‘휘청’

고 전 총리가 정치판에 회의를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공했다는 분석도 측근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고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 발언을 놓고 격한 공방을 벌였는데, 현직 대통령과 ‘거리 두기’로 청와대와의 관계를 스스로 악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대통령의 발언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는 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민주당 신중식 의원은 지난 17일 SBS라디오에 출연,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결심한데는 ‘노무현 대통령 스트레스’가 상당히 작용했다”고 분석하며 “대통령의 모독적 발언에 황당해 하면서 충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기 꺽인’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따라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힘든 안개정국이 시작된 것, 다시 말해 개헌 이슈가 상반기 내내 정국을 뜨겁게 달구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사실상 고건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논의는 사실상 물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고 전 총리의 불출마 결심을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 총리가 중도하차한 데는 건강 문제도 배경이 됐다는 얘기도 퍼지고 있다. 지난해 6월 폐렴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가 최근 두문불출하는 동안 ‘중병설’이 나돌았는데, 그는 “지난 수개월간 호흡기 질환을 치료받아왔고 현재 완치 단계에 있다”고 밝혔지만 건강 문제가 알려진 것보다 심각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이런 까닭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이 ‘전략적 이별’이 아니냐는 극히 가능성 낮은 관측마저 제기하고 있다. 한발 나아가 최근 10여일간 칩거도 ‘전략적 침묵’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정계은퇴, 전략일까?

현재 상황이 고건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만큼 불리한 전선에서 싸우는 것은 실익이 없기 때문에 여론이 좋아지고 내세울 명분이 생기면 대선 무대에 재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가 이미 ‘킹’으로서 정계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나중에 정치권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대선정국에서는 킹메이커로서의 주도권을 행사하며 ‘여러 후보 중 한 명’을 지지할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고 전 총리가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을 놓고 이처럼 각종 뒷말이 난무하고 있는 이유는 범여권 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가 중도하차를 선택한 것을 쉽게 납득하는 게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유력한 경쟁주자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주자 간 불협화음이 노출될 가능성이 다소 큰 한나라당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고 있다. 고 전 총리의 사퇴 이후 유권자 상당수가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등 상대진영쪽으로 움직였다는 설문조사 결과에도 불구, 혹시 있을지 모를 ‘역풍’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높은 한나라당은 각종 음모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음모론의 1순위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개입 가능성.

한나라당 정진섭 기획위원장은 지난 17일 “고 전 총리는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단순히 물러날 사람은 아니”라며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권력의 작용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고 전 총리의 갑작스런 사퇴에는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여권의 후보구도 ‘정리작업’과 연계시켜야 한다는 다른 표현인 셈이다.실제 고건 전 총리의 대선 불출마 선언 직후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0%대를 회복했다. 20%대를 넘어선 것은 4개월 만의 일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배후설

리얼미터는 이에 대해 “그가 언론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지만,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으로 정계개편의 중심축으로 이동하면서 기존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소 무리에 가까운 전망이지만, 여권의 분열과 이합 집산의 속도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손학규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고 전 총리의 사퇴가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여권으로 영입하는, 이른바 ‘손학규 카드’를 염두에 둔 여권의 재집권 시나리오가 아니냐는 무리한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 구도로는 대선 승리 가능성이 ‘제로’인 여권이 한나라당 내에서는 진보에 가까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여권 통합신당의 ‘우두머리’로 영입하기 위한 사전 물밑작업이 아니냐는 것이다.일각에서는 고 전 총리에 대한 기업들의 정치자금이 사실상 끊긴 것이 아니냐는 다소 황당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모아둔 대선자금이 없다”거나, 이와 반대로 희망연대 등 외곽단체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합법적이지 않은 자금이 사용돼 정치자금과 관련된 ‘약점’을 잡힌 것이 아니냐는 ‘카더라’ 통신도 제기되고 있다.이와 함께 측근들로부터 제기되는 불출마 이유는 가족들의 만류설. 언론보도를 요약해보면, 부인인 조현숙 여사는 “가족들에 대한 얘기가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된다”면서 강력히 만류했고, 자제들도 고 전 총리의 출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 전 총리 “의혹들 사실무근”

그러나 고 전 총리측은 이 같은 주장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이다. 고 전 총리는 다만 “본래 저는 정치권 밖에 있던 사람이고 탄핵정국의 국가위기관리를 끝으로 평생공복의 생활을 하려 했으나 예기치 않게 국민적 지지를 받게 돼 그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지금에 이르렀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누차 말을 했고 지금이 그 적절한 시점”이라고 밝혔다.“현실정치에 한계를 느껴 일체의 정치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고 전 총리는 현재 호남 지역에 머물며 혼자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통령이 되는 길을 포기했을까. 정말 그의 말대로‘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였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