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이 번 돈 ‘개’같이 쓰다?
[매일일보=김시은 기자]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린 공기업의 방만 경영. 올해도 어김없이 공기업의 부채는 날로 증가하지만 제 밥그릇 챙기기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공기업이라는 말만 들어도 도덕적 해이를 떠올릴 정도다. 특히 해마다 국정감사에 문제가 심각하게 지적되고 있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부패 목록에 페이지 수만 차곡차곡 쌓여갈 뿐이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도 공기업의 비리백태는 여실히 드러났다. <매일일보>이 방만 경영 일삼는 공기업의 비리백태에 대해 취재해봤다.
매해 공기업 부패목록 차곡차곡, 밥그릇 챙기기는 여전
내부 감시 시스템이 ‘부실’ 임직원 도덕적 불감증 팽배
먼저 빼먹는 사람이 ‘임자’
공기업들이 지난해 자체 감사에서 적발한 가장 대표적인 비리 유형은 회삿돈을 빼돌린 것.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한 직원은 회삿돈 1억9천만원을 환급금으로 둔갑시켜 외부인의 차명계자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산하 한국체육산업개발 직원 김모씨 등은 축구교실 회원들이 낸 수강료와 상가 보증금 등 1억여원을 빼돌렸다가 적발돼 해임조치가 내려졌다. 업무 관련 정보를 흘려주고 뒷돈을 받았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다. 토지주택공사의 한 직원은 거래 업체에 회사가 계획 중인 공사 정보를 알려주고 8차례에 걸쳐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다. 관광공사에서는 해외 출장을 다녀온 직원이 식사비 등 호텔 경비를 이중으로 청구했다가 적발됐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공기업 돈은 먼저 빼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 특히 이러한 비리의 원인은 방만 경영 때문이다. 최근 방만 경영으로 지적돼 성과급이 조정되고 기관경고 조치가 내려진 공기업도 수두룩하다. 지난 4일 기획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용섭 의원(민주당)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도로공사, 토지공사, 석유공사, 철도공사 등 4개 공기업이 지난 2008년과 2009년 경영평가 관련 허위자료를 제출했다.‘몸통’ 아닌 ‘깃털’만 슬쩍?
이처럼 공기업들은 시장경제에 노출되지 않고 독점적으로 재화를 공급하고 있다는 이유로 방만 경영을 일삼고 있다. 정부에 경영평가서를 허위로 보고하는 등 탈법·편법행위를 시도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것. 특히 이러한 혈세들은 관장의 연임과 직원들의 성과급으로 사용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검찰은 공기업 비리 원인으로 임직원들의 업무 재량 범위가 넓고, 내부 감시 시스템이 부실하며 임직원들의 도덕적 불감증이 심각한 점 등을 꼽았다. 국가보조금의 경우 지급심사 및 관리가 형식적이고 담당 공무원까지 범죄에 가담하는 등 ‘주인 없는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고 지적했다.아울러 검찰의 수사가 공기업 임직원의 일부 개인 비리를 밝혀내는 데 그치고 사장 등 최고위층까지 이어지는 상납고리나 정치권과의 유착 의혹은 밝혀내지 못해 ‘몸통’이 아닌 ‘깃털’만 건드렸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무엇보다 공기업의 비리는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이 된다. 이는 나아가 국가 기강이 흔들릴 수도 있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공기업은 정부를 대신해 대형 국책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공기업 부채가 우려할 만한 수준이 되면, 재정건전성은 자연히 악화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공기업은 경영의 비효율 때문에 생긴 부채를 정책 집행 때문에 생긴 탓으로 돌리면서 경영 개선 노력을 안 하고 있다. 공기업의 자구책도 필요하지만 비리와 부패가 가능한 현재의 온정적인 내부 감사와 미흡한 통제수단에 대한 정책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