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정인봉에게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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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정인봉에게 ‘낚였다’
  • 최봉석 기자
  • 승인 2007.02.16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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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 변호사, ‘검증가치 없는 자료’ 왜 공개했나

정인봉 변호사의 '허풍'으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132호 정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캠프의 법률특보를 역임했던(15일 사퇴) 정인봉 변호사는 지난 15일 대선예비후보 검증위원회(검증위)에 이른바 ‘이명박 X파일’을 전달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내용이 공개되면 이명박 전 시장은) 무척 아프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 변호사가 이날 오후 국회에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 등이 담겨 있는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당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 회의장을 방문할 때만 해도, 이 전 시장 캠프측은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 등이 담겨있다는 A4용지 1천여 페이지 분량의 서류뭉치가 분홍색 보자기에 싸여 검증위로 넘어감과 동시에 이명박 캠프측은 “(우리도) 박근혜 X-파일이 있다”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인 뒤 2시부터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50%대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은 곤혹스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여론조사 1, 2위를 달리는 이명박 박근혜의 ‘충돌’을 다루는 여의도發 드라마로 인해 그동안 제기돼 왔던 “50%대 한나라당 지지율이 쉽게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마저 내놓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단연 ‘정인봉 변호사’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검색어 1순위로도 등극했다.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이명박측은 결과물을 보고 ‘어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수한 경선준비위원장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맹형규 부위원장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변호사가 지난 9일 이 전 시장에 대한 도덕성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후 정확히 1주일 만에 사태는 일단락 됐고 나아가 도덕성 검증논란은 당분간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만, 후유증이 클 것으로 보인다.

‘15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은 내용, 당시 김유찬 비서관을 해외로 도피시켜 유죄판결을 받은 자료.’
‘정 변호사가 제출한 자료는 대부분 판결문과 관련 신문기사, 인터넷 기사를 복사한 것.’

한나라당 경준위인 ‘2007 국민승리위원회’가 이날 정 변호사가 제출한 이른바 ‘이명박 X-파일’과 관련해 검증자료를 검토한 뒤 “검증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으며 밝힌 내용들이다.  경준위 이사철 대변인은 회의종료 후 브리핑에서 “검증위원 4명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정밀검토한 결과 선거법 위반과 범인 도피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수사가 종료돼 유죄판결까지 받은 사안”이라며 “더 이상 경준위에서 조사하거나 새로운 더 이상의 자료를 얻을 수 없어 검증절차를 밟지 않고 종료키로 했다”고 말했다. 경준위는 정 변호사가 제출한 자료 일체를 언론에 공개했다.이 대변인은 또 오후 국회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정 변호사가 제출한 자료 전체를 공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법원 판결문과 언론보도를 3부씩 복사한 자료 이상은 없다”고 말하자 “어, 설마 아니겠지”하는 기자들의 수군거림이 있었다고 당시 참석한 기자들이 전했다.

◇ 이명박 마침내 ‘역전승’
정인봉에게 ‘낚였다’… “황당하다” “모욕감을 느꼈다”

김수한 경준위 위원장은 자료를 본 직후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맹형규 부위원장은 “황당하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批: 태산이 떠나갈 듯 요란을 떨더니 튀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이다”고 말한 것으로 경준위원들이 전했다. 맹 부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황당하고 다른 위원들도 다 황당해하더라”면서 “내가 생각하기엔 도덕성 문제를 재점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든다”고 말했다.당 경준위가 이 같이 결론을 내린데 대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도 “국민과 당원을 혼란케 한 데 대해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질타했다.정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고, 박근혜 캠프측은 이를 말리고, 이에 따라 발표가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행동들은 한마디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자 ‘비열한 수법’이라는 게 이 전 시장측의 주장이다.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X-파일’이 검증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고 결론이 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사기극” “박근혜 캠프가 책임을 져야 할 것” “전형적인 정치공작” “자작극으로 보기 힘들다” “당이 엄정하게 문책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며 책임론을 거론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특히 정 변호사가 박 전 대표의 법률특보를 맡았고 캠프회의에도 참석했다는 점, 그리고 박 전 대표가 경질하지 않겠다는 두둔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아꼈다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며, “독자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전 캠프측이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한나라당은 시쳇말로 ‘정 변호사에게 낚였다’며 허탈해하는 표정이다.

◇ 박근혜, 정말 몰랐을까?
박근혜 전 대표…정치적 타격 입을 듯

당내 경선판도는 물론 올 대선정국에 굉장한 파괴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이명박 X-파일’이 실체없는 빈수레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은 박 전 대표측이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박 전 대표측이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이번 검증 공방을 통해 양측의 감정 대립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고, 특히 공세를 받은 이명박 전 시장측은 “(박근혜와 이명박의 지지도 격차가 배 이상 벌어지면서) 박근혜 전 캠프측과 정인봉 변호사가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이면서 공작을 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해왔던 터라, 제출 자료에 새로운 의혹이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역공을 펼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물론 정인봉 변호사는 박 전 대표의 법률특보직을 사퇴했으나, 법조계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말도 안되는’ 의혹만 제기하고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점에서 앞으로 검증론 자체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지율이 뒤쳐진 상태에서 ‘악재’가 터진 박근혜측은 그러나 이 같은 점을 의식한 듯 ‘피아 구분’에 나섰다. 한마디로 “정인봉 개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이다.박 전 대표 대리인으로 경준위에 참여하고 있는 김재원 의원은 한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박 전 대표는 이 내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최경환 의원은 “이번 사안은 정인봉 개인 차원의 일”이라고 일축했다.이는 만약 “박 전 대표 또는 캠프 전체가 ‘이명박 X-파일’ 문제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이명박 전 캠프측의 주장이 향후 경선 과정에서 대세론으로 자리매김할 경우, 박근혜 캠프는 ‘정책 공방’이 아닌 ‘음해 공방’의 대권주자로 비쳐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 변호사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고통을 받았던 이 전 시장측에선 대반격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 난처한 입장에 놓인 박 전 대표측에서는 반드시 위기를 탈출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박 전 대표측 일각에서는 조직적으로 음모적으로 관여한 결과가 이 정도겠냐며 오히려 이 전 시장측이 음모설을 제기한 데 대해 사과하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정 변호사, 문제가 없다는 것 정말 몰랐나?
쏟아지는 의혹들… 도대체 왜 엉뚱한 짓 했나

정인봉 변호사는 이날 한나라당에 파일을 넘기면서 “여기에 진실이 다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빈상자’로 드러났다. 그럼 여기서 드는 의문증. 정 변호사는 당 경준위가 “검증할 가치가 없다”고 결론내릴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서울대학교 법학학사 출신인 정 변호사는 ‘법조인’답게 그동안 당당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이는 이명박측이 피곤해했던 이유다. 기자들과의 접촉에서도 스스로 준비한 ‘카드’가 많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부터 시작해, 재산형성 과정의 문제점, 서울시장 재임시절 비리 의혹, 청계천 복원 문제, 뉴타운 건설 등.한나라당 심재철 의원도 “개인의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것들까지도 당의 ‘공식 검증기구’가 공식적으로 거론해서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라며 “예상컨대 당의 공식 검증기구에서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 변호사의 개인검증 필요성을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처럼, 이번 일로 '신용을 잃어'버렸다.이와 관련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정 변호사는 과거 사건이긴 하지만 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 내용을 크게 봤을 수도 있다”고 두둔하기도 했다. 정 변호사 역시 “국민은 그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선거법을 위반하고 범인을 도피시킨 이 전 시장의 부도덕성을 알리기 위해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변호사가 겨우 ‘이런 자료를 갖고 그렇게 큰 소리를 쳤을까’라는 궁금증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이는 정 변호사가 아직 공개하지 않는 또 다른 X-파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관측으로, 만약 이럴 경우 검증논란의 불씨는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는 대목이다.일단 윤리위는 오는 20일 정 변호사를 소환, 사실관계에 대한 소명을 들은 뒤 징계수위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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