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개구리소년' 사건 16년간 쌓인 가족의 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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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개구리소년' 사건 16년간 쌓인 가족의 恨
  • 한종해 기자
  • 승인 2007.03.30 15: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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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시효 만료 1년째 끝내 '완전범죄로 남게 되나?'

‘도룡뇽’을 찾으러 산으로 올라갔던 5명의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이 올해로 16년째다. 하지만 아이들을 죽인 범인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 지난해 3월 25일은 개구리 소년 사건 공소시효 만료일이었다. 만료일까지 15년간 아이들을 잃어버린 죄로 힘들게 살아온 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개구리 소년의 범인은 영원히 땅속에 묻혀 버린 것이다.

1991년 3월 26일. 그날은 지방자치제단체 선거가 처음으로 열리는 날이었다. 부모들은 모두 투표하러 나갔고, 아이들 5명은 와룡산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잡은 ‘도룡뇽’이 햇볕에 말라버려 다시 잡으러 나간 것. 아이들은 그렇게 집을 떠났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저녁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5명의 아이들이 모두 돌아오지 않은 것은 뭔가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가족들은 파출소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지만 하필 투표 날이어서 경찰관 모두가 투표 감독하러 나간 상태. 결국 가족들은 근처 군부대로 찾아가 서치라이트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해발 300m도 안 되는 와룡산에 올라갔던 아이들. 조금만 더 일찍 도움을 받았더라면 이렇게 사건이 장기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보름이 지나자 경찰들도 단순 가출이 아니라고 생각, 1991년 5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치안본부장에게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실종 어린이들을 찾아내라’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하지만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가족들은 직접 전단을 만들어 뿌렸다. 트럭을 타고 전국을 돈지 3년 6개월. 가족들은 지쳐갔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 받기 시작했다.

신고 내용도 황당했다. ‘실종 소년들이 나환자촌에 암매장됐다’라는 신고로 직접 수사를 하기도 했고 ‘아이들을 죽인 것은 가족 중 한 명일 것이다’라는 한 교수의 말에 한 가족의 집 마당이 파헤쳐지는 만행을 겪기도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40대 여성은 법정에서 자신이 유인 암매장 했다는 허위 진술을 하기도 하는 등 초동신고 미비로 가족들의 고통은 끊이지 않았다.

수사에 진척이 없자 결국 사건을 담당했던 대구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해체되고, 대구 달서 경찰서로 사건이 인계됐다. 쏟아지던 신고 횟수로 줄었다. 거기서 개구리소년은  잊혀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2002년 9월 26일, 밤을 줍기 위해 와룡산에 올라갔던 한 등산객이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출동했지만 유족들은 또 경찰의 주먹구구식 수사에 분노를 삼켜야했다. 유골현장 보존은커녕 곡괭이와 삽으로 현장을 파헤쳐놓은 것. 유골 5개중 4개를 파헤친 경찰은 과학수사연구소를 불러 조사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골 발견 이틀 만에 사인을 자연사로 추정한 것. 경찰은 소년들이 야간에 길을 잃고 헤매다 탈진해서 숨겼다고 발표해버렸다. 마을에서 불과 3km떨어진 와룡산은 동네 사람들이 언제나 놀러 다니던 곳이라 아이들 역시 친숙한 곳이었는데 길을 잃고 탈진해서 사망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하지만 유골을 감식했던 경북대 법의학팀은 검사 40여 일 후에 타살로 결론지었다. 경찰의 주먹구구식 수사가 얼마나 잘못됐는지 밝혀낸 것이다.무엇보다 유가족들이 범인을 확신하게 만드는 증거가 현장에서 나왔다. 바로 두 발의 총탄. 당시 와룡산 부근에는 50사단의 사격장이 있었다. 가족들은 아이들이 실종되자 군부대를 의심했고 유골현장에서 나온 총탄 두 발은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다.하지만 당시 경찰이 군을 조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그해 12월 대구 동화사 통일대전에서 개구리 소년 천도재가 열렸다. 유골 발굴로 수사는 활기를 얻는 듯했지만 답보 상태였다. 유족들은 유족이 발견된 지 1년이 되는 2002년 9월 26일 합동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가 경찰의 미진한 수사에 반발 2004년 3월 26일 실종 13년 만에 가족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다.지난 달 1일 이영호 군 유괴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 ‘그놈목소리’가 개봉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고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 폐지 여부는 국내에서 아직도 불투명한 상태다. 피해를 당한 가족은 죽는 날까지 아픔을 고스란히 지니고 살지만 범인은 15년만 피해 살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공소시효가 범인의 인권은 보호해주면서 피해자는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숨바꼭질 게임의 승자(?)는 범인으로 끝났다. 이미 공소시효를 넘긴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은 범인을 잡아도 법정에 세울 수조차 없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아들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마음은 아직도 겨울이다. 평생 가슴속에 묻고 살아가야 할 ‘죄의식’은 언제쯤 사라질까? 매년 3월만 되면 가슴 아파하는 피해부모들의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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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상 2007-04-05 12:29:19
아직 안끝났다. 어떤 놈들인지 잡히기만 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