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회심의 미소’ 자신감 속 10일 출마 선언’…박근혜 우회적 압박
‘발등 찍힌’ 朴, “이런 식으로 하면 경선없다”…경선 불출마 ‘시사’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룰 중재안’을 발표한 지난 9일과 10일, 양 캠프의 반응은 이랬다.
#1. 어쨌든 ‘환영’.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당시 충남 보령ㆍ서천 당원 간담회를 위해 이동 중이었다. 두 달 넘게 끌어온 이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갈등을 정리(?)하기 위해 ‘강재섭 중재안’은 오전께 마침내 발표됐고 이 전 시장측 캠프에선 의원단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의견은 물론 엇갈렸다.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론과 “받아들이자”는 온건론이 충돌했다. 시간이 흘러 오후 4시. 이 전 시장이 조치원에서 고대캠퍼스 대학생을 상대로 특강을 마치자 기자들은 “중재안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물었다. 그는 핵심 측근과 전화로 뭔가 얘기를 주고받더니 전화를 끊고 이렇게 말했다. “중재안을 수용하겠다.” 혼란으로 치닫고 있는 당의 모습을 바꾸기 위한 ‘명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다음 날인 10일 염창동 당사를 찾아 “나도 이번 결정에 불만이 있다”면서 “그러나 국민의 따가운 눈총과 화합과 단합을 요구하는 당원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선후보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2. 죽어도 ‘반대’. 이 전 시장측이 손익계산을 하며 갑론을박 하고 있을 때 박근혜 전 대표측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아니 더욱 긴박하게 움직였다. 중재안이 일정부분 이 전 시장측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했던터라 캠프는 사실상 ‘비상’이 걸렸던 상황. 오전 11시 박 전 대표는 중재안에 따른 시뮬레이션을 가동하던 핵심 참모 10여 명과 접촉했고 곧바로 결과를 보고받았다. 그러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원칙에 맞는 것이냐.” 오후 2시 충청포럼 특강을 위해 대전을 방문한 박 전 대표는 “원칙이 무너졌다”며 사실상 중재안에 대한 거부의사를 밝혔다. 박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경선 불출마’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 전 대표는 다음 날인 10일 고양여성문화회관에서 열린 덕양갑을 당원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한나라당은 원칙도 없는 당이고 이런 식으로 하면 경선도 없다”고 말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당이 결국 쪼개지는 것 아니냐”
4.25 재보선 이후 이명박.박근혜 ‘빅2’간 책임공방이 제기되는 등 한나라당이 내분사태로 휘청거리자 강재섭 대표는 갈등 요인 중 하나인 ‘경선 룰’과 관련, 양측의 입장을 절충한(?) 중재안을 전격 제시했다.그러나 박 전 대표측이 이를 거부하면서 당 전체가 극심한 혼돈의 소용돌이로 빨려들고 있다. 충격적인 재보선 참패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이명박ㆍ박근혜 두 진영의 대립과 갈등, 이로 인한 당 분열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재보선 참패 이후 약 일주일 정도 두 진영은 숨을 죽이며 ‘자숙 모드’에 돌입하는가 싶더니 정확히 보름 만에 링 위로 올라가 한판 대격돌을 위한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공격에 먼저 나선 쪽은 박근혜 전 대표측. 그동안 ‘경선룰 원칙 고수’라는 명분 속에서 이 전 시장에 대한 맹공격을 퍼부었던 박 전 대표측은 ‘경선 불출마’라는 히든카드를 꺼내들었다. 일단 중재안에 대한 ‘압박카드’로 분석되지만 실제 불출마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당안팎에서는 두 진영이 분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기본 원칙도 무너졌고, 당헌당규도 무너졌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도 무너졌다면서 사실상 중재안 철회, 그러니까 원래대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박 전 대표의 공격에 이 전 시장 진영은 ‘노코멘트’의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시장측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만년 지지율 2위 후보의 ‘압박 카드’ 정도로 해석하며 의연한 모습이다.박근혜 ‘반발’에 이명박 ‘경고’
사실상 승기를 잡은 이 전 시장측은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경선 룰 대충돌에도 불구하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경선 룰 공방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중재안 공방 속에서 대선출마를 강행한 것도 박 전 대표에 대한 ‘경고’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해석하고 있다.이 전 시장측의 이 같은 행동은 일단 ‘민심’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 지지율 1위의 자신감 넘치는 행보가 자칫 당을 둘로 쪼개는 상황에 일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도 피어오르고 있다.문제는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한나라당을 구원할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은 그 어디에도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중재안 가결 가능성 높아, 당 분열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박 전 대표측이 중재안에 대한 불만을 품고 집단행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돼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대선주자인 원희룡 의원은 “전국위 표결은 심한 경우 ‘각목 사태’까지도 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이와 관련 친박성향의 김학원 전국위 의장은 지난 10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양측의 합의가 안된 중재안은 당을 쪼갤 수 있기 때문에 상임전국위를 진행하지 않겠다”며 강 대표를 압박하고 있어, 정치권은 오는 21일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결별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한나라당 내에서 보여줬던 ‘백가쟁명식 수습책’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른 '침묵' 속에서 오히려 재보선 이후 잠잠했던 최고지도부 해체론이 모락모락 피어날 조짐이다. 강 대표가 전국위 이전까지 중재에 실패할 경우 이 같은 목소리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전국위를 개최하기도 전에 지도부가 총사퇴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당 해체 주장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당으로서는 반드시 피해야할 경우의 수다. 소장파 의원모임인 수요모임의 대표 남경필 의원은 이와 관련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이 대승적 차원에서 강 대표 뜻에 따르던가 아니면 현 지도부를 해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상황이 이렇게 한나라당에 계속 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되자 박 전 대표측이 대승적 차원에서 중재안을 전격 수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지금이 ‘평시’라면 몰라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전시’라는 상황에서 정권탈환을 위해 두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원심력을 키워야지, 반대로 잡음을 내며 충돌할 경우 백전 백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정치전문가들의 분석 때문이다.‘전국위’ 열었다가 ‘분당위’로 종결되나
결국 한나라당 내에선 ‘전국위’를 열었다가 ‘분당위’로 종결될 수 있다는 근심과 걱정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박 전 대표측에서도 강 대표 체제를 안고 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하지만 정치전문가들은 이 또한 당의 근본 문제가 해소되는 수습책이 아니라 미봉책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강재섭 대표가 갖고 있는 ‘힘’ 때문이다. 양대 대선주자는 현재 강 대표에 대한 재신임을 확인했지만 그는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 대표는 두 가지 중 하나가 선택될 경우 자신의 자리에 대한 최종결정을 내려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먼저 중재안이 가결될 경우. 박근혜측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박근혜측 한 관계자는 “법적 대응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헌법상 민주적 기본원리에 저촉되는 당헌을 가진 정당은 해산 사유가 된다는 의견이 당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만큼 박 전 대표측에서는 충분히 검토 가능한 내용이다.반대로 부결될 경우. 이 역시 박 전 대표측에서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해 현 지도부를 교체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도부가 물러난다는 것은 빅2간의 분열이 더 심화됐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셈이다.이명박, 박근혜, 강재섭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마이 웨이’를 외치고 있다. 당이 살아남기 위해선 양보가 필요한 시점인데 말이다. 양보가 없다면 파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