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삶의 종착역, 잃을게 없어 무서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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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삶의 종착역, 잃을게 없어 무서운 것도 없다”
  • 한승진 기자
  • 승인 2011.07.0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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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화재에 폭우까지…전쟁터 방불케하는 포이동266번지의 사람들

[매일일보] 서울에 시간당 43mm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3일 오후. 포이동 판자촌(현 개포4동) 주민들은 장대비 속에서도 이날 저녁 촛불문화제를 위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맞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60~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서너명이 판자촌 앞 1차선 도로에 비닐천막을 차례차례 세우고 있었다. 빗물이 먼저 쳐진 비닐천막 위에 고이면 노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 발 뒤꿈치를 들고 물을 쏟아냈다.

판자촌 안쪽으로 들어가자 컨테이너 4개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포이동266번지사수대책위원회'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회관과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그리고 공권력 투입에 대비한 농성망루를 겸하는 곳이었다.

50~60대 여성 10여명이 사무실 건너편에 마련된 33㎡(10평) 남짓한 취사장에서 무를 썰고, 마늘을 다지고 있었다. 가마솥 뚜껑을 들 때마다 새어나오는 250명 분의 삶은 고기냄새가 물비린내를 뚫고 굽이굽이 퍼졌다.

재활용 깡통더미 위에 식판을 올려놓은 채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한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는 궁핍함보다 비로소 허기를 때웠다는 안도가 느껴졌다.  

일견 평화스러웠지만 전쟁은 지척이었다.

취사장 뒤쪽으로 지난달 12일 이곳을 휩쓸고 간 화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안방과 부엌이 맞붙어 있는, 기껏해야 7㎡(2평) 남짓한 공간들이지만 주민들이 30여년 동안 동고동락한 곳의 8할은 이제 다만 잿더미였다. 폐허 속에 나뒹구는 반쯤 녹다 만 냉장고가 화재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대책위 조철순(53) 위원장은 "당시 화재로 이곳에 있던 96세대 중 도로변 쪽 세대들을 제외한 74세대가 불에 탔다"며 "오갈 데 없는 74세대는 집이 성한 22세대에 얹혀사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자, 덩달아 쥐떼가 몰려들었다. 먹이를 쫓는 들고양이떼가 그 뒤를 따랐다. 잦은 비로 인해 인근 양재천에서 개체수를 불린 모기떼도 포이동 판자촌을 휩쓸고 있었다.
▲ 지난 6월12일 발생한 화재로 판잣집들이 전소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개발지역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 위원회에서 조철순 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노인들은 고양이 교미소리에 잠을 청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모기에 물려 온몸을 긁느라 밤을 새기 일쑤라고 전했다.

주민들은 급한 김에 잿더미 위에 임시거처라도 짓고 싶어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날 강남구청은 주민들이 무허가 건물을 다시 지을 경우, 강제철거에 나서겠다고 공식발표했다. '비극은 비극이지만, 법은 법이다'라는 게 강남구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조 위원장은 "이 난리에 강제철거하겠다는 것이 사람이냐"며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포이동 판차촌의 비극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부자동네 강남에 판자촌이 들어선 것은 군사정권 시절이다. 1981년 정부는 넝마주이 등 도시 빈민들을 포이동 200-1번지로 이주시켰다. 당시 빈민들이 '도시미관'을 해친다고 판단한 정부는 거처를 제공해주고 일자리 알선 등을 통해 자활을 주선했다. 그래서 빈민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자활근로대'였다. 이같은 연유로 포이동 판자촌의 현재 공식명칭은 '재건마을'이다.

이후 자활근로대가 해체되고 이 지역에 포이동 266번지라는 새로운 주소가 주어지면서 비극은 본격화됐다.

정부는 이 과정서 원주민들의 주민등록 등재를 받아주지 않았다. 동시에 공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다며 토지변상금을 청구했다. 토지변상금은 세대당 3000만~4000만원에 이른다.

정부는 주민들이 국가땅을 무단으로 썼으니 돈을 내라는 것이고, 주민들은 이주 당시 강제성이 있었다며 토지변상금을 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2003년부터 주민들은 서울시와 강남구청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2004년 토지변상금 때문에 고민하던 김천복(당시 60세)씨가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꼭 한달 뒤 남편을 따라 아내 임경숙씨도 자살을 선택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넝마주이를 하던 김씨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우체국 직원이던 임씨와 연애를 하다 어렵사리 결혼했다. 하지만 평생을 먼지구덩이에서 보낸 김씨는 늘그막에 진폐증에 걸렸고, 아내가 허드렛일을 해 벌어오는 월 56만원으로 삶을 이어갔다. 김씨가 죽기 전 진폐증 때문에 빌려 쓴 산소기 임대료만 월 25만원이었단다.

이주가 강제인 것인지, 아니면 자발적인 것인지가 포이동 판자촌 비극의 원천인 셈이지만 동시에 96세대 중 35세대가 생활능력이 사실상 전무한 65세 이상 노인가구라는 점도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노인들은 주위의 눈총을 받으면서 넝마주이를 해 2세를 키웠지만 가난은 자신들에게나 자식들에게나 내내 공평했다.
▲ 6월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이동 화재현장에 마련된 간이 숙소에서 화재 피해를 입은 주민이 낙담하고 있다.
강남구가 이주에 대한 조건으로 제시한 임대주택은 한시적인데다 토지변상금이 발목을 잡고 있어 언제 길거리에 내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마을 주민 전반에 퍼져 있었다.

안산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화재소식을 듣고 부모의 안부가 적정돼 이달 들어 자주 본가를 찾는다는 A씨. 그는 올해 42세지만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넝마주이가 자랑할 게 뭐 있겠냐"며 이름을 밝히길 극구 거부한 그는 "가난이 주민들을 이주하고 싶어도 이주를 못하게 한다"고 푸념했다.

주민들은 강남구청이 강제철거에 들어온다면 '제2의 용산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김모(63) 할머니는 "10년을 싸웠는데, 다 늙고 목숨만 연명하고 있다. 병나고 죽어나가야 해결이 될 것이다. 임대아파트 안 가면 공권력 투입한다고 하니 그때 죽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한 중년 남성은 "이명박 대통령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넝마주이로 호구지책을 했다고 말했다는데 지금 우리를 보고 뭐라 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석주(65) 할아버지는 "구청에서 철거하러 온다는 소릴 들었다. 죽기살기식으로 싸울 것이다. 우리는 여기가 삶의 종착역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무서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폐허 한 가운데 놓인 붉은 대야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선명히 써있었다. 마치 포이동 판자촌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것처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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