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필수품 ‘사회 환원’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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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 필수품 ‘사회 환원’ 카드?
  • 권민경 기자
  • 승인 2007.08.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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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의지 아닌 처벌 면하기 위한 위기모면용

일부 재벌, 사회공헌 그룹 지배수단으로 이용하기도

[매일일보닷컴] “우리나라 재벌들은 자발적인 의지보다 형사 처벌을 받을 상황에만 여론에 밀려 사회환원 사업을 하는 게 안타깝다” 지난달 27일 열렸던 현대차 정몽구 회장 비자금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담당판사가 던진 쓴소리다.

재판부 이재홍 부장판사는 미국 빌 게이츠의 예를 들어가며 “외국 재벌들은 ‘자신이 번 돈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환원 사업을 한다”며 한국 재벌들의 사회공헌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 재벌 기업들은 매년 사회공헌 활동에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명확한 비전 없이 단순 기부에 그치거나,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도덕적 의무가 아닌 여론의 요구에 따른 ‘마지못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일부 재벌 기업의 경우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보유를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그룹 지배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 정몽구 회장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비자금 항소심 공판이 열렸던 지난달 27일 법정에서 1조원 규모의 사회환원 일정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9월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11월까지 장·단기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예전부터 계획해오던 사회공헌활동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며 사회환원이 형량을 낮추기 위한 방편이 아닌 순수한 의도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 회장의 이런 계획이 곧 내려질 항소심 판결에서 실형선고를 면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지적이 높아 정 회장의 사회공헌 선언을 순수하게만 바라보는 시각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8천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해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비용을 기반으로 설립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은 지난 3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 장학지원 및 교육여건 조성 사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의 헌납에 대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반면 이것이 불법대선자금,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등 삼성그룹과 이 회장 일가를 둘러싼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위기모면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재벌 사회공헌 공익법인, 총수일가 영향력 아래 놓여

그런가하면 일부 재벌의 경우 사회공헌활동을 위한 공익법인을 그룹 지배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리포트를 통해 25개 기업집단 공익법인의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을 공개했다.
‘재벌 소속 공익법인의 계열사 주식 보유 현황 및 문제점’이란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공익법인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수가 가장 많은 재벌은 삼성그룹으로 4개 공익법인이 9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동부와 롯데그룹에서 각각 1개 공익법인이 7개 계열사 지분을, 태광그룹은 2개 공익법인이 6개 계열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 금호그룹은 3개 공익법인이 5개 계열사 지분을, SK그룹은 1개 공익법인이 5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두산과 한진그룹은 각각 1개 공익법인과 4개 공익법인이 4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농심,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태영건설 등 4개 회사는 공익법인의 지분율이 5%를 초과하고 있어 재벌 총수일가의 안정적 지배권 확보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가하면 33개 공익법인의 이사장(대표이사) 33명의 구성을 보면 총수일가가 직접 이사장을 맡고 있는 경우가 19명으로 57.6%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전현직 계열사 임원을 포함해 총수일가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이사장은 28명으로 84.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공익법인 이사 전체 261명의 구성을 보면 총수일가는 41명으로 15.7%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전직 계열사 임원이 13.4%인 35명에 달한다. 이들을 포함해 모두 118명, 즉 전체 이사의 45.2%가 총수일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총수일가(총수 부인이나 전직 총수)나 전직 계열사 임원들 역시 공익법인 이사직을 통해 그룹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반대로 총수일가는 이들을 통해 공익법인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 사회공헌 1회성 행사로 그치는 경우 많아

한편 국내 상당수 대기업들 역시 사회공헌활동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도 단순 기부나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전경련에서 발표한 ‘2005년 기업·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 비용은 지난 2005년 1조 4025억원에 달했다. 이는 기업 평균이익의 2.2%에 해당하는 수치로 1.3% 수준인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것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더불어 최고 수준이다. 최근 국내 모 컨설팅 업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 비용 역시 1조7천억원으로 집계돼 비용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6년 3086억원이었던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지출규모는 2002년 1조866억원, 2004년 1조2284억원으로 급증했다. 한 기업 당 평균 사회공헌비용 역시 2004년 54억원, 2005년 57억원, 지난해에는 6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국내기업 10개 중 7개는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고, 임직원들의 참여율도 70%로 높아졌다. 그러나 대부분이 사회복지시설 방문, 수재민 돕기, 장학금 전달 같은 일회성 활동에 치우쳐있고, 그나마도 기업 이미지 홍보 또는 개선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해마다 양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여서 비용 지출만을 놓고 보면 선진국 수준에 다다랐다”면서 “중요한 것은 창출된 이익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투자할 줄 아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업들의 근본적 인식 변화”라고 설명했다. 또 “사회적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벌이는 1회성 행사나,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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