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박문순 성곡미술관장 비리의혹 ‘정조준’…재벌 안주인 미술관 비리실태 도마 위에
30여개 재벌 미술관, 대부분 안주인이 ‘관장’…규모 갖춘 곳 5곳
재벌 안주인 사교장으로 전락…재벌 간 자존심 대결로 설립 남발
전근대적인 운영방식 대부분…미술계에 악영향 끼친다 한 목소리
박문순(53) 성곡미술관장이 신정아씨로부터 받은 조형물 리베이트의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박 관장은 신씨와 함께 사법처리 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5일 “박 관장이 신씨가 조형물을 판매하면서 받은 리베이트 가운데 공금으로 처리되지 않은 1억여 원 가량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박 관장이 신씨에게 오피스텔 보증금 2천만 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하고 돈을 준 이유에 대해서도 집중 추궁 중이다. 지난 달 28일 박 관장 자택 압수수색에선 50억원 이상의 ‘괴자금’이 발견되기도 했다. 신정아 게이트에서 ‘성곡미술관’이 이처럼 비리사건의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세인의 관심사는 성곡미술관의 존재 여부 또는 신정아씨의 사법처리보다는, 이 미술관의 관장인 박문순씨가 ‘재벌 사모님’이라는 사실에 집중돼 있는 듯하다.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은 김석원(62) 쌍용양회 명예회장(쌍용그룹 전 회장)의 부인이다.
그래서 한발 더 나아가 재벌 안주인들의 기업 미술관 운영에 대해서도 적잖은 토론이 활발하다. 재벌 안주인이 미술관장직을 맡고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이들이 관장으로서 갖춰야 할 미술관 경영능력이나 미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느냐는 것. 미술계에선 이 같은 현상이 미술계에 ‘약’이냐 ‘독’이냐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알려졌다시피 신정아씨는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시작했다. 금호미술관이 이번 사건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 금호미술관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금호그룹과 관련돼 있다. 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여동생인 박강자(66)씨가 이 미술관을 운영 중이다.검찰이 신정아씨의 비호의혹을 수사하면서 재벌 안주인들이 관장을 맡는 ‘기업 미술관’에 대한 실체분석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재벌 사모님들의 미술관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일단 그 실태부터 보자. 미술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는 30여 개의 미술관이 있는데, 대부분 미술관의 관장은 재벌가의 안주인이 맡고 있고 이 중에서 제대로 규모를 갖춘 곳은 대기업 안주인이 운영하는 5군데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구체적으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씨가 관장을 맡은 삼성미술관 리움(부관장은 홍라영씨(홍라희 관장 동생)),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 부인 정희자씨가 관장직에 있는 아트선재센터, SK 최태원 회장 부인인 노소영씨가 이끄는 아트센터나비 등이 대표적인 예다. 홍라희 관장은 서울대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했는데, ‘디자인’ 분야에 나름대로 전문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리움은 기획과 전시형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관으로 조사된 바 있다.재계 이건희, 미술계 홍라희
재벌 안주인 미술관장 역임, 부끄러운 일
미술계 전문가들은 재벌 안주인들이 미술관이나 화랑과 같은 곳이 풍기는 ‘고상하고 호화로운’ 분위기를 바란 나머지 아무 생각 없이 관장에 취임한 결과, 신정아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작금의 재벌 미술관들의 전근대적인 운영방식에 한 몫 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한 미술평론가는 “신정아 사건의 경우 재벌 일가 및 개인소유가 많은 미술관에서 이렇다 할 검증없이 친분관계로 채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생긴 현상”이라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못한 재벌 집안 안주인들의 미술관 관장 취임은 미술계에서 볼 때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화된 미술관이 증가해야 하고, 검증받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검찰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신정아씨가 성곡미술관에 대기업 후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2억4천여만 원을 가로채 이를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검찰의 수사 중심이 앞으로 박 관장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일각에선 ‘신정아 게이트’로 치명타를 입고 있는 재벌 미술관이 비단 성곡미술관에게만 해당이 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성곡미술관처럼 관장 자택에서 발견된 괴자금이 쌍용일가의 비자금일 가능성이라는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미술관=비자금’으로 연결되는 불똥이 다른 재벌 미술관으로도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해당 미술관들은 이 같은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