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도기천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저축은행 사태가 다시 불붙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핵심 로비스트인 박태규가 검거돼 전․현정권 고위 인사 등 로비대상자들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저축은행 비리사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과 금융당국은 18일 추가로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과 관련, 대주주 비리 등 뒷배경을 추적하고 있다.
외압 ‘옛말’…칼빼든 檢, 금융브로커-권력실세 연루 추적
여야합의로 핵심인사 국정감사 증인채택…출석여부 관심
박지만 부부-삼화銀 신 회장, 알고보니 ‘소망교회 인맥’
신 회장, MB조카사위에 불법대출해 ‘씨모텍 인수’ 공모
“칼은 이미 손을 떠났다”
MB(이명박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다시 불거진 저축은행 사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대대적인 물갈이인사로 시작된 일련의 금융개혁 조치로 더이상 윗선(청와대)과의 교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더구나 현 정권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권력이양기(레임덕)에 직면하면서 검찰, 금융사정기관 등을 통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0년 동안 금감원에 몸담아온 한 직원은 “최근 대대적인 쇄신인사가 단행된 이후 어느 누구도 윗선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없다. 이번의 7개 저축은행 영업정지만 보더라도 토마토,제일, 프라임 등 업계 2~3위 대형저축은행들이 포함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만큼 소신껏 처리했다는 반증이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자체 개혁으로 부서장의 85%를 물갈이 했다. 현직 부서장 55명 중 국제업무 등의 8명만 유임됐을 뿐 나머지는 다른 권역으로 이동배치 됐다.
또 검사업무 강화를 위해 부원장보를 1명 늘리고 검사인력을 종전의 400명에서 101명 증원(25.3%)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최근 직원교육을 통해 “현 상황은 설립 이후 최대의 위기이며 비상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쇄신을 촉구했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이번에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들이 BIS(자기자본비율)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을 낱낱이 파악한 뒤, 대주주 비리 등 혐의가 드러날 경우 즉각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수사팀의 전열을 다듬고 삼화저축은행 금융브로커 이철수씨의 본격적인 검거에 나섰다. 이씨는 저축은행 불법대출에 관여하고 정관계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중 지난 5월 돌연 자취를 감췄다.
검찰은 지난 6월 체포팀을 늘린데 이어 최근 강력부로부터 인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충원 가능한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서라도 신출귀몰한 이씨의 도피행각에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다.
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신호철)도 보해저축은행에서 2000억원대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로 이씨의 뒤를 쫓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씨가 수천억대 불법대출을 알선하는 과정에서 정관계에 로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 회장-박지만 부부 ‘끈끈한’ 사이
삼화저축은행 사건에는 수도권 의원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친동생 지만씨 부부의 연관설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측근을 통해 삼화저축은행으로부터 수억원대의 돈을 받은 의혹이 있는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과 민주당 임종석 전 의원을 최근까지 수차례 소환조사했다. 공 의원은 여동생이 3년 동안 1억8천만원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며, 임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의 보좌관 곽모씨가 신삼길(구속 중)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으로부터 3년간 매달 300만원씩 모두 1억8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로 기소됐다.
‘박지만씨 부부’ 관련 건이 국정감사에서 다시 불거질 지도 관심사다. 국회 저축은행 국정조사특위는 지난 7월 지만씨와 그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를 증인으로 청문회석에 앉히는 문제를 두고 충돌, 결국 증인채택이 무산된 바 있는데, 이번 국감에서 야당 의원들이 다시 의혹을 제기할 것으로 전해진다.
지만 씨는 금융위원회에서 저축은행 부문을 총괄 담당하고 있는 고위직 김모 씨와 고교 동창이며, 신삼길 회장과는 58년생 동갑내기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최근 대정부질문을 통해 “신 회장이 연행되기 두 시간 전에도 박지만씨와 함께 있었다”며 “지만씨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는 삼화저축은행의 고문으로 일을 하다가 신 회장이 구속되는 등 사건이 터진 직후에 고문을 사임했다”고 밝혔다.
서 변호사가 대표를 맡았던 법무법인 주원은 2009년 4월20일부터 2010년 4월19일까지 1년간 삼화저축은행과 자문 계약을 한 뒤 1년 더 연장해 올해 4월까지 계약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지난 4월2일 구속됐다.
소망교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 직분을 갖고 있는 ‘MB의 모교회’로 익히 알려진 곳으로, 정부부처 주요 관직 인선 때마다 ‘소망교회 인맥’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곳.
홍 의원은 이런 배경을 두고 “신삼길 회장과 박지만씨,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아주 가까운 사이”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제보에 따르면 신 회장과 박씨, 정 수석이 매우 친밀한 사이로 자주 운동도 하고 밥도 먹으며 만났다고 한다”면서 “박씨의 부인이 삼화저축은행의 고문변호사가 될 만큼 막역한 사이이고 고문변호사라면 사건이 터졌을 때 변론하고 일을 수습해야 하는데 왜 사임을 했는지가 의문”이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야당의 의혹제기가 불거지자 검찰도 지난 6월부터 박지만 씨와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 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수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브로커 이철수씨의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만큼 사건이 다시 ‘빛’을 보게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MB테마주’로 띄워 주가조작
삼화저축은행 사건의 또다른 한 축은 MB조카사위 전종화씨가 관계된 불법대출, 주가조작 사건이다.
신 회장은 2009년 자본금 5000만원의 신생업체인 나무이쿼티가 정보기술(IT)업체인 씨모텍을 인수할 수 있도록 거액을 불법대출하거나 투자했는데, 나무이쿼티의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사위(대통령의 친형인 이상은 (주)다스 회장의 사위)인 전종화(44)씨였다. 씨모텍은 MB조카사위가 투자하고 있는 제4이동통신사업권 유망주임을 내세워 250억원 규모의 증자에 성공했다. 여기에다 50억원을 차입, 총300억원의 인수대금으로 전씨는 씨모텍 경영권을 인수했다. 자기자본 한 푼 없이 M&A를 성사시킨 셈.
검찰은 이 과정에 삼화저축은행 신 명예회장이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법대출 차원을 넘어 주가조작에 관여했는지도 수사대상이다.
씨모텍을 인수한 전씨는 2010년부터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착수, 가장 먼저 제4이동통신사업권 확보에 매진했는데, 대통령 조카사위가 참여했다는 점 때문에 기대를 모았고 주가도 3000원대에서 9000원대로 치솟았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 등에 따르면, 씨모텍은 제4이동통신사업자가 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한국모바일인터넷(KMI)에 600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사업권 확보에 실패했고,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제4이동통신 참여 등을 내세워 주가를 띄운 것이 아니냐는 ‘먹튀’ 의혹이 제기됐다.
전씨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 불거지자 야당은 지난해 국감 당시 전씨를 증인으로 호출했으나, 전씨는 해외출장을 이유로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
부산저축銀 김두우 수사…정관계 긴장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은 핵심로비스트인 박태규(71) 씨가 검거돼 입을 열면서 로비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씨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김두우(54)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 핵심 배후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박씨가 부산저축은행그룹 김양(58) 부회장한테서 받은 구명로비자금 15억원 중 1억원 안팎의 금품이 상품권이나 현금 등의 형태로 김 전 수석에게 건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수석은 그 대가로 금융당국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전 수석의 통신조회영장도 발부받아, 김 전 수석이 박씨와 접촉한 시점을 전후해 통화한 금융당국 관계자나 정치권 인사가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 전 수석은 15일 사표를 냈으며, 21일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은 또 박씨가 금융감독원 고위간부에게 수천만원대 상품권을 건넨 정황을 포착,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 또한 그가 실무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통화내역도 조회하고 있다. 하지만 박씨는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와는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인사차 상품권을 건넨 것일 뿐이라고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참여정부 때 시작된 것이라는 점에서 현정권, 전정권 할 것 없이 권력실세들이 줄줄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미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과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김광수 전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장 등이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 및 금품수수 혐의로 줄줄이 구속 기소된 마당에 또 다시 김 전 홍보수석까지 비리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관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여기다 새로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불법행위도 속속 드러나고 있어 이에 대한 수사까지 확대될 경우 저축은행 수사는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편 국회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이영수 KMDC 회장, 신삼길 전 삼화저축은행 대주주, 저축은행 로비스트로 알려진 박태규, 이철수씨, 김하중 우리금융저축은행장, 조은옥 햄튼 대주주 등 저축은행 관련 거물급 인사들을 채택했다.
이들이 출석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아 이번 국감에서 저축은행 관련 의혹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지 불투명한 가운데, 국민들의 공분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