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공천 과정 통해 ‘이명박 사단’ 구축 복안…차기 대권주자 朴, “수용 불가”
양측 기싸움 ‘현재 진행형’ 속, 朴 최악의 경우 최후 항전 위해 ‘탈당’ 강행 가능성
[매일일보닷컴] “총선 기획단 논의가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예민한 지점’으로 진입 중이다.” 공천심사위원회 한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내뱉은 말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내 공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방중을 계기로 ‘잠시나마’ 소강상태를 보였던 한나라당 ‘공천 갈등’이 다시 재폭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공천심사위 구성 문제를 놓고 이 같은 혼란스러움은 본격화되고 있다.
한나라당 총선기획단은 이날 오전 여의도당사에서 단장인 이방호 사무총장 주재로 두 번째 회의를 열고 공심위원 인선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친이(親李)계와 친박(親朴)계의 충돌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등 공천심사위원회 구성 문제가 갈등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총 11명의 공천심사위원(공심위원) 중 외부 인사 비율을 6, 당내 인사 비율을 5로 구성키로 결정한 상태다. 그런데 이 당선자 측과 박 전 대표 측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 당선자 측은 “최대한 중립적 인사들로 공심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박 전 대표 측은 “중립 인사는 없다. 계파간 안배를 해야 한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양측 대표들이 참석하고, 양측이 인정하는 중립 인사로 채우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게 박 전 대표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 당선자 측은 ‘공정하고 투명한’ 공심위를 꾸리기 위해선 당헌ㆍ당규에 따라 중립적 외부 인사를 절반 이상 넣고 나머지는 ‘중립을 지켰던’ 당내 인사들로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측의 의견이 충돌하고 있지만,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이 당선자 측의 손을 사실상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박 전 대표 측의 요구가 수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마디로 ‘계파 안배’는 고려하지 않겠다는 계산.
양측의 갈등은 ‘공심위원장을 누구로 하느냐’를 놓고도 증폭되고 있다. 이 당선자 측은 중립적 인사 가운데 ‘가급적’ 외부 인사로 영입하자는 의견인 반면, 박 전 대표 측은 당내 인사 가운데 양측이 인정하는 중립적 인물로 뽑아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이 당선자 측에선 1순위로 인명진 당 윤리위원장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박 전 대표 측에서는 강창희 인재영입위원장과 권영세 전 최고위원 등을 1순위로 추천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후보군은 물거품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 이 당선자 측이 고려하고 있는 인물군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친이 성향”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이고, 반대로 박 전 대표 측이 고려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이 당선자 측 또한 ‘친박 인사’로 분류하며 고개를 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당선자 측에서 2순위 후보로 내놓은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과 박 전 대표 측에서 후보로 내세운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공심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공심위원 가운데 내부인사는 일단 중립성향 의원 가운데 정문헌, 장윤석, 나경원 의원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고 외부 인사는 법조계, 학계, 노동계, 재계, 문화계 등에서 고르게 추천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심위가 어떤 인물로 어떻게 구성되느냐’는 한나라당의 존립 여부와도 연결된다. 공천문제로 친이 측과 친박 측이 충돌 양상을 빚자 이명박 당선자는 지난 15일 강재섭 대표를 만나 “비선ㆍ밀실 공천은 없다”고 약속했다. 이 당선자의 발언 때문에 양측은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외견상 ‘휴전 모드’다.
‘휴전’ 모드에서 ‘확전’ 모드로 이어질 듯
그러나 ‘휴전’이 ‘확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당선자와 강재섭 대표 측의 ‘진짜 속내’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위원장, 위원 인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 당선자 측과 박 전 한나라당 대표 진영 간에 대충돌이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정치학자 등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당선자 측의 진짜 의중은 이미 다 공개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와 달리 당내에 입지가 두텁지 않은 이 당선자 측은 이번 공천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아군’을 대거 끌어들이려는, 다시 말해 ‘이명박 사단’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이와 반대로 ‘차기 대권’을 사실상 노리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선 고분고분하게 자신의 몫을 상대진영에게 고스란히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력의 ‘유지’보다 ‘강화’가 차기 대권의 경쟁력과 연결돼 있기 때문.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공심위) 외부 인사들의 성향은 대부분 친이(親李)가 될 수밖에 없다”며 외부 인사 비율 또한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오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위원장, 위원 인선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 측은 이와 관련 “(우리 측 주장대로) 공심위가 구성되어야 (공천과 관련한) 공정한 심사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박 전 대표의 경고가 현실화될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공천 문제와 관련, 지난 11일 “공천이 조금이라도 잘못 간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지하겠다”며 언론을 통해 ‘거침없이’ 밝혀왔다.
이런 우려와 달리, 오는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이른바 ‘개헌선’까지 얻기를 기대 중인 이 당선자 측의 입장에선 무조건 박 전 대표에게 양보, ‘화합 모드’로 탈바꿈한 뒤 4월 총선을 맞이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당선자 측은 여전히 ‘박근혜 총리 카드’를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이 당선자 측이 ‘한나라당 안주인’인 박 전 대표에게 그에 걸맞는 ‘예우’를 해줄 경우 박 전 대표 역시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즉 박 전 대표가 요구하는 방향대로 공천 문제가 정리되면, 박 전 대표 역시 차기 정부 초대 총리직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이 당선자 측에서 먼저 자기 팔을 자르는 형식의 ‘과감한 물갈이’가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 한 고위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총리 카드를 절대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총리를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말을 뒤집을 가능성이 낮을 뿐더러, 정부 조직개편에서 총리실 역할이 대거 축소되면서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측근들의 입에서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양보’냐, 박근혜 ‘양보’냐
설상가상으로 박 전 대표를 향한 이명박 당선자 측의 공격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계 ‘좌장격’인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1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공천 시기 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과 관련 “옛날 야당처럼 계보를 챙기고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국민의 눈에 곱게 비치겠는가”라며 “벌써부터 ‘내 몫 내놔라’하는 것이 국민 기대에 처음부터 잘못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안타깝다”고 언급, 앞으로 두 달여간 계속될 공천을 둘러싼 양측 진영의 기싸움이 ‘현재 진형형’임을 드러냈다.
상황이 이렇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 측의 목소리가 당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상황인 ‘탈당’을 강행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꽤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한 인사는 “탈당을 염두하고 박 전 대표가 전면전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볼 때, 공천심사위 구성의 중립성 요구는 어쩌면 ‘최후의 항전’ 성격이 짙다는 뜻이다.
박 전 대표 측도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공천심사위 구성이 편파적으로 이뤄질 경우 박 전 대표로서도 결심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탈당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상태다.
물론 한나라당으로서는 이 같은 상황은 반드시 피해야할 경우의 수다. <문화일보>는 지난 15일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경우 오는 4월9일 총선에서는 당초 예상보다 38석이 줄어든 147석을 얻어 원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할 것”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