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안상미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고압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지난 16일 분신사망한 이모(74)씨의 장례를 둘러싸고 한전 측과 주민들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특히 한전 측이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인근 사찰 주지 스님에게 성폭행에 가까운 폭력을 휘두른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농지 한가운데 송전탑 건설… “농사 포기 하라는 것” 주민들 분개
폭력에 짓밟힌 주민, 결국 ‘죽음’ 선택…국회 지경위 진상조사 착수
한국 불교 태고종이 공개한 영상에는 지난해 11월 10일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한전측 공사 관계자들과 고령의 주민이 대치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5분가량 담겨있다.
영상에는 1명의 주민에게 공사관계자 3명이 합세해 입에 담지 못할 성적인 폭언과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 현장에는 한전 관계자와 송전탑 건설공사 한전 감리, 경찰 5명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양건설산업 머리 보호구를 착용한 이도 보인다.
또 지난해 12월 10일 한국 불교 태고종이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에는 현장의 소나무 벌목을 가로막는 주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인근 절의 백모 주지스님이 2~3명의 공사관계자에 의해 쓰러지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를 발견한 주민이 구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공사관계자에 의해 제지당했고 한전 감리는 여성인 백 주지의 팔을 꺾고 “이 년 얼굴 사진을 찍으라”고 말하며 음부를 수회 가격했다.
세 명의 남성에게 짓눌린 백모 주지가 한전 감리의 상의를 움켜잡고 버티는데 한전의 시공사인 대동전기 기술이사는 “너 xx년아, 넌 죽었어. 내가 나가면 너 xx(성기)를 찢어 죽여 버릴거다”라며 성적인 폭언을 퍼부었으며, 가까이 있던 주민의 머리채를 잡고 욕을 했다.
현장을 지켜보던 할머니들은 땅을 치며 “내 듣다 듣다 이런 심한 욕은 처음 듣는다. 너는 거기서 안 나왔나. 어떻게 그렇게 심한 욕을 퍼붓노”하고 통곡하자 기술이사와 한전 감리는 할머니들에게도 성적 폭언을 내뱉었다.
이런 장면 틈틈히 경찰은 “그만들 하라”며 만류하며, 오히려 백모 주지를 구하려는 주민들을 공사관계자로부터 떼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부상을 입은 백 주지는 공사관계자들로부터 음부를 맞고 골반이 비틀려 병원에 17일간 입원했으며 현재까지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다.
공개된 영상들은 한전 측에서 송전탑 공사를 막는 주민들을 업무방해로 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촬영한 영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영상에는 오히려 7년 동안 송전탑을 반대해 온 밀양주민의 절박함과 처절한 저항이 고스란히 담겼다.
노인들에게 “불태워 죽여버린다”며 협박
밀양시 보라마을은 70~90세의 노인들이 농사로 대를 이어가는 마을이다. 지난 16일 분신 사망한 이씨는 97세 노모를 모시고 3형제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이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왔다. 하지만 한전 측이 신고리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송하기 위해 세계 최대인 765kW 규모의 송전탑 공사를 추진하면서 이씨 가족은 생계를 잃게 됐다.
이씨의 논은 시가로 8억8천여만원. 하지만 한전이 제시한 보상액은 8백8십만원이었다. 농지 한 가운데에 송전탑을 세우고 송전탑의 면적만큼만 보상한 것.
농지 한가운데로 송전선로가 지나가게 돼, 송전탑을 제외한 나머지 땅에 농사를 짓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한전은 공공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토지는 강제수용 할 수 있다며 공탁금 6천만원으로 공사를 강행했다. 농민으로부터 농지를 뺏는, 생계를 끊는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보상액수의 문제도 있지만 토지변경으로 농협대출마저 막혔다. 송전탑을 세운 다른 마을 주민들로부터 “전자파 때문에 주민들 대부분이 암으로 죽었다”, “소가 송아지를 낳지 못 한다”는 흉흉한 말들이 나돌았다. 고령의 주민들은 “대를 이어가며 살아온 이 마을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마을이 되고 있다”며 망연자실했다.
움막에서 투쟁하는 주민들은 “하루하루 살이 떨린다”고 한다. 폭압적으로 공사를 강행하는 관계자들이 거의 매일 찾아와 70~90세의 고령인 주민들과의 몸싸움과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기 때문.
할머니들이 소나무를 베지 못하게 막았던 날은 공사관계자가 전기톱을 휘둘러서 가까이 있던 할머니들이 입고 있던 솜바지가 찢어지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놀라 넘어진 할머니들에게 “불태워 죽여버린다”고 협박한 것도 공사관계자들이었다.
‘사고사’로 덮으려는 한전
이처럼 한전 측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공사를 강행하며 주민들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결국 지난 16일 이씨가 분신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설 연휴가 끝난 25일, 주민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장례위원회는 밀양시청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장례위원회 측은 “아직 한전 측과 협상이나 만남이 전혀 없는 상태”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허엽 한국전력 전무는 “이씨가 몸에 기름을 묻힌 상태에서 추워서 깻단에 불을 붙이다가 실수해서 불이 옮겨 붙은 사고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장례위원회는 “한국전력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두 번 죽이려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일식 집행위원장은 “상식적으로 몸에 기름을 부은 상태에서 불을 붙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이라며 분개했다. 또 “평소에 고인은 ‘내가 죽어야 송전탑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자기 몸을 희생한 마을의 열사인데 한전 측이 그 죽음을 왜곡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장례위원회는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국회의원을 대책위에 포함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국회 지경위에서는 이종혁 의원, 조경태 의원을 포함한 송전탑 농민분신사망관련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장례위원회는 26일 밀양시청 앞 분향소에서 이씨의 유족과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계획 등을 밝힐 예정이다.
한전 “합법적인 공사 방해하는 주민이 더 문제”
현재 한전은 이씨가 사망한 다음날인 17일 오전부터 밀양지역 15개 공사장의 송전탑 건설 작업을 일시 중단한 상태다. 장례위원회에서 90일간 공사 중지와 지경부장관과 김중겸 한전 사장의 공식 사과와 장례비용을 한전에 요구했지만 한전 측은 유감 표시와 조문, 상황이 수습될 때까지의 일시적인 공사 중단만 표한 상태다.
밀양 송전탑 공사 담당자인 한전 송광목 차장은 “토지보상법에 따라 사용면적에 해당하는 토지의 액수만 보상하면 된다. 송전탑 주변에 농사를 짓는 데 어려움은 인정하지만 농경지로써 전혀 활용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주민과의 대치 과정에서 있었던 폭력 사태에 대해서는 “오해다. 합법적인 공사인데 오히려 주민들이 공사를 방해한 것”이라며 “시공사 직원들과 주민들과의 상황을 한전에서 다 관리할 수 없다. 폭력사태에 관해 경찰이 조사 중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더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폭력이 오고간 현장에 한전 직원이 있었다는 점을 거론하자 “누구인지 파악이 안 된다. 용역직원일 것이다. 잘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이씨의 분향소에 모인 장례위원회의 주민들은 고된 농사로 손톱이 다 빠지고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한 평생 농사만 지은 노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