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개발부지에 2개 도로 편입…텍사스촌 “진입로 막혀 생계 곤란”
지역주민 “공사장 높은 가림막 때문에 강도 날뛰어 무서워서 못살겠다”
텍사스촌 ∙ 지역주민 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살 ‘길’을 달라” 가두시위
[매일일보닷컴] 한 곳에 어울려 있지만 남과 북이 그렇듯 서로 왕래가 없던 두 무리였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만 모른 척 눈감고 살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 두 무리가 한 데 어울려 같은 소리를 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속칭 미아리텍사스촌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 또 인근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하월곡동 88번지 집창촌 인근에 D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높은 가림막이 설치돼 그 가림막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31일부터 건설현장 앞에서 성북구청과 D아파트 건설사를 상대로 보상과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근지역 주민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성매매 여성들과 업주들이 큰 소리를 내며 거리로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음지에 숨어 지내던 이들이 벌건 대낮에 얼굴을 드러내며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이유를 <매일일보>이 집중추적 해봤다.
“성(性)노동자, 우린 아직 살아있다”
물론 이들의 ‘영업’은 엄연히 불법이다. 특히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포주와 성매매여성은 물론 성매수자인 남성들까지 처벌을 받게 됐다. 이에 대한 여파로 우리나라에서 ‘물 좋기로 소문난’ 성매매집결지 중 하나였던 미아리 텍사스촌의 400여개에 달했던 성매매업소는 지금 140여 곳으로 줄었다. 이 곳 성매매여성들의 숫자도 2천여명에서 반수에도 훨씬 못 미치는 4~500명으로 줄어든 상태.실제로 텍사스촌 곳곳에는 오랫동안 영업을 하지 않은 듯한 업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집기가 아무렇게나 부셔져 있는 곳, 출입구가 합판으로 막혀 있는 곳 등 빈 업소들이 많았다. 각종 스티커들이 지저분하게 붙어 있는 것은 골목의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업소나 입구쪽에 위치한 업소나 매한가지였지만 그나마 중앙통로 쯤으로 보이는 듯한 곳과 출입구가 나 있는 입구쪽 상황은 그나마 나았다. 가지런하게 커텐으로 가려져 있는 출입문의 풍경은 “이 업소는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구석진 곳과 달리 비교적 출입구 쪽은 어느 정도의 손님유치에 용이했기에 생존(?)이 가능했던 것. 그러나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진 줄만 알았던’ 미아리 텍사스촌은 현재도 여전히 ‘영업중’이고, 아직도 2~30대의 아가씨들이 ‘항시 대기중’이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오후 4시경에도 몇몇의 성인남성들이 마담을 따라 업소로 들어가는 광경이 보였고, 성매수자를 기다리는 성매매 여성들이 거울 앞에 앉아 단장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텍사스촌 일대를 운행하는 한 택시기사는 “예전보다 텍사스촌을 찾는 남성들이 줄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겠다”면서 “요즘에도 3~4명의 남성들이 삼삼오오 택시를 타고 텍사스촌으로 가달라고 말한다. 밤이면 텍사스촌 앞에 거사(?)를 치르고 나온 손님을 태우고 가려는 택시들이 바글바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뉴타운 재개발공사로 인해 포주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자신을 이곳의 포주라고 밝힌 한 여성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후로도 이렇게 손님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면서 “정말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 공사장 가림막이 쳐진 이후부터 수입이 전혀 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의 양미간은 이내 곧 주름이 잡혔다. 1979년 텍사스촌에 발을 담그게 됐다는 다른 또 포주 최모(46 ∙ 남)씨는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갈 곳이 없는 사람들뿐이다.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이전에 다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고, 대부분의 포주들은 월세로 업소를 얻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이 재개발되더라도 보상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야한다”고 말했다.지난 1일 이들의 집회에는 소식을 듣고 참석한 성매매업소의 건물주도 있었다. 멀리서 집회를 바라보던 70대(남) 건물주는 “지난 몇 달치 월세가 밀린 것은 물론이고 이미 2~3천만원에 달하는 보증금까지 월세로 까먹은 상태”라며 “몇 차례 가게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했지만 장사가 안돼서 그런다며 조금만 봐달라고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월곡동 88번지 일대 주민들 “아직도 70년대? 인권 유린당하고 있다”
관할구청 ∙ 건설사 모두 ‘나몰라라’
그러나 텍사스촌 사람들과 인근주민들의 염원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담당 구청은 물론, 해당 건설사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내보이고 있기 때문.이와 관련 성북구청 뉴타운 개발국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11월 이후 하월곡동 뉴타운 개발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민원이 들어온 것이 없다”면서 “최근 들어 텍사스촌 주민들을 중심으로 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그들의 요구는 지금 당장 도로를 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장부지 전체가 일정한 계획을 갖고 순서대로 시공되기 때문에 도로만 따로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통로를 막기 1달 전부터 홍보를 했고, 우회로도 만들어 놓은 상태”라고 덧붙였다.D아파트 건설사 역시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 게다가 텍사스촌 포주들이 건설사에 대해서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 문제 해결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해당지역 건설현장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정당한 절차를 밟아 구청으로부터 허가받아 지난 1월 11일에 착공에 들어갔다”면서 “텍사스촌 포주들이 ‘가림막 때문에 손님이 줄었다’며 140여개 업소의 3개월치 월세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데 보상해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이어 이 관계자는 “다만 도의적이고 지역을 위하는 차원에서 가림막 밑으로 가로등을 설치해주겠다. 또 쓰레기 무단투기가 증가했다고 하니 쓰레기를 수거해주는 정도의 책임은 지겠다”면서 “집창촌에 손님이 없어졌다고 인식하는 것은 성매매특별법 때문이지 절대 가림막 때문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31일부터 계속해서 집회를 주최하고 있는 성매매 집결지 자율정화위원회측은 “앞으로 한 달간 합법적인 투쟁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금전적인 보상도, 도로도 확보해주지 않는다면 이 투쟁을 끝낼 수 없다”고 밝혀 이들의 집회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이와 관련 종암경찰서 한 관계자는 “생계가 곤란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집창촌은 분명히 불법”이라고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