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권희진 기자]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영유아 보육 지원 확대 방침에 따라 올 3월부터 만 0-2세와 만5세 아동에 대해 무상보육이 시행되는 가운데 정작 지원혜택을 받는 부모들의 반응은 냉랭해 그 배경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무상보육을 둘러싼 실효성 등에 대해 부모들이나 보육복지분야 등 각계각층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정부여당에서 내놓은 ‘선심성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구색은 그럴 듯하지만…선거 의식한 선심성 졸속정책 한계
최대 실수요층은 혜택 배제, 보육시설 부족에 쏠림현상까지
엄마가 키우는 아이는 차별
지난해 12월31일 국회를 통과한 2012년도 예산안은 복지 분야에 만 0~2세 보육료 지원 사업 신설과 함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전 계층이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3월부터 만2세 이하 유아는 어린이집 이용 시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무상보육이 실시된다.
지난 해 2011년까지 어린이집 무상보육은 소득 하위 70% 가정에만 지원됐는데, 금년 예산부터 소득과 관계없이 0-2세의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지원이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보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확대하는 것이기에 분명 환영할 만한 측면이 있지만 여기저기서 불만을 사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만 2세 이하’ 영유아들도 ‘어린이집을 이용할 경우’에만 국한해 지원되는 부분이다.
이는 다시 말해, 가정양육을 하는 경우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의미로, 이런 차별의 문제는 작년까지도 이어져 가정양육을 하는 부모들의 비판이 제기됐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 정부가 만 5세의 보편적 무상보육 시행을 3-4세 무상보육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나 연말 예산 처리 과정에서 3-4세 무상보육 확대는 이번에도 고스란히 빠졌다는 점이다.
전 계층 무상보육이 만 0-2세와 만 5세 영유아들에게 시행되면서 만 3-4세는 종전과 같이 ‘소득 하위 70%’ 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시행 되는 것에 대해 시민단체와 부모들은 “0-2세 무상보육 확대 시행이 졸속 처리 되었다”고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다.
YMCA “차별 없는 양육수당 필요”
지난 1월10일 서울YMCA는 0-2세 무상보육 예산안 통과에 대해 “실제 가정 육아현실과 괴리된 결정으로, 영유아 시기에는 무상보육이 아닌 차별 없는 양육수당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성명서에서 YMCA는 “정작 지원이 필요한 3-4세 영유아 가정은 이전과 같이 소득 하위 70%만 해당 된다”며 “더군다나 실제 혜택을 받는 가구는 크지 않아 자기부담은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YMCA는 특히 “정부방침대로 영유아 무상보육 지원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이제 이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0-2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한다”며, “어린이집은 턱없이 부족하고 만 3세 이하의 어린이를 받아주는 곳도 흔치 않다”고 정책의 비현실성을 꼬집었다.
YMCA는 또한 “만 0-2세는 영유아 발달과정에 있어 부모와의 애착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로 가정양육이 보다 중요한 시기”라며 “만 0-2세 영유아 부모들이 무상보육지원과 가정양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YMCA는 더불어 “만 0-2세에 대한 무상보육은 현실에 맞게 만 3-4세 무상보육으로 즉각 수정돼야 한다”며 “지금의 만 0-2세에 대한 지원은 ‘소득구분 없는 양육수당’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도 불만
YMCA의 지적처럼 실제 현실에서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이나 일선 어린이집에서 보육일을 하는 교사들도 정부정책의 불합리성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생후 11개월 딸을 둔 직장여성 권아무개씨는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에 환영하지만 아직은 아이가 두 돌은 지나야 어린이집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실제로 주변 엄마들과 대화를 나눠 봐도 다수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권씨는 “만 2세 이하 아이는 스스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탓에 감기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고, 의사표현도 어렵기 때문에 쉽게 방치되기 쉽다”며, “무상 보육 대상자를 늘리는 것에 환영하기보다 믿고 보낼 수 있는 보육 여건과 조성이 되지 않는다면 지원이 있어도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단순한 예산 지원보다는 보육 여건 개선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구색은 그럴듯한 정책 같지만 정작 수요자들에겐 와 닿지 않는 정책”이라며 정부정책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 토로한 권씨는 “한 부모 자녀나 도저히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상황 등에 놓였을 때 마지못해 보육시설에 맡길 뿐, 환영하는 입장은 극히 드물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어린이집 자체도 부족한데다…
보육 수요에 비해 어린이집의 공급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경북 포항시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매일일보>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무상보육 지원이다 보니 부모들이 너나없이 보내려는 상황으로 대기자 수도 많고 정원이 꽉 찬 반도 있다”며, 정부 지원을 받으려는 부모들이라도 보육시설 부족으로 인해 혜택을 못받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보육시설의 수를 무조건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데 심각성이 더해진다.
경북 봉화에서 4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어린이집 가운데서도 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통해 우선순위가 갈린다”며 “적당히 분위기를 봐서 입소문이 가장 좋은 어린이집으로 이왕이면 보내려고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어린이집 수 자체도 부족한데다 특정 어린이집에 많이 몰리는 과열 현상까지 있어, 어린이집 입소를 위해 부모들이 아침부터 줄을 지어 대기하는 풍경이 전해질 정도”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복지단체 관계자는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법인 어린이집에 비해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보육교사의 처우나 아이들의 생활환경이 열악한 경우가 많다”며, “오세훈 전 시장이 ‘서울형 어린이집’이라는 이름으로 보육시설 개선에 대해 생색을 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한 부모들의 선호가 여전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