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도 안 돼 죽겠는데 왜 사진까지 찍고 난리냐”고 면박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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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도 안 돼 죽겠는데 왜 사진까지 찍고 난리냐”고 면박 줘
  • 홍세기 기자
  • 승인 2004.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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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체제 때보다 불황 골 더 깊다"
"대통령은 민생을 책임질 수 있어야"


"언니! 신발 싸게 줄게. 보고 가. 응?”  “다른 집에도 이만한 가격에 안 팔어, 여기서 사! ” 이것도 젊은 상인들의 입에서만 흘러나온다. 체념한 듯 기력이 빠진 상인들은 가게 앞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거나 지나가는 손님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한다.  ‘골라 골라’ 흥겨운 장단을 기대했던 남대문 문화는 생각외로 차분하기만 하다. 근심에 쌓인 남대문 시장은 오늘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11월 초, 여의도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3만여 명의 음식업주들이 400여개의 솥단지를 내팽겨 치는 일이 있었다.  임대주택 체납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영세업체의 경우 공장의 기계가 가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동차 소모품가격이 오르자 소비자들은 정비를 미루고 자동차 경정비업체들이 울상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형 사채업은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수출은 호황이나 내수가 침체된’ 한국의 경제현주소, 서민들의 삶 속에서는 어떤 애환이 있을까. 마음이 답답해질 즈음 찾는 명동거리, 뉴스에 매번 등장하는 번듯한 명동거리의 옷집보다 사실 사잇골목의 할인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이 곳은 오늘도 골목 사이사이에 많은 소비자들이 숨어 있었다.


명동거리를 거닐고 인근의 백화점에 들어갔다. 한산한 내부를 둘러보고 막연하게 경기불황으로 인한 구매력 저하를 멀게나마 느낀다.  사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옷 한 벌에 수백만원이 넘는 백화점보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시장에서 더 잘 알 수 있다. 나는 발길을 돌려 의류와 악세사리 1번지인 남대문 시장으로 갔다.


떼를 지어 관광을 하는 외국인들과 유창한 외국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을 보면서 남대문 시장만의 ‘생기’를 느낀다. 반면 어느 곳에서는 손님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인지 가게를 들어가도 주인은 TV만 보고 있기도 했다.


“손자 볼 나이에 벌어야 산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아동복만큼은 경기를 타지 않는다’는 의류업계의 공공연한 비밀 속에서 70세 정도로 보이는 노모는 익숙지 않는 상술로 손님들에게 아동복을 판다. 가까이 가 물어보니 며느리가 하고 있는 장사인데 사람을 쓴 돈이 없어 낮에는 직접 뛴다고 한다.  아동복만큼은 경기를 안 타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지금 먹는 장사도 솥두껑을 내던지는 판국에 옷은 더하지”라며 집에서 손자의 재롱을 볼 나이에 찬바람을 맞으며 아침에 나온다고 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남대문의 아동복 판매가 30%정도 절감한 상태에서 경기침체와 중국, 동남아 제품이 급부상하는 가운데 ‘남대문아동복’은 그 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시장 바닥 한가운데서 인삼과 대추를 파는 할머니, 그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말았다. 할머니는 나를 거침없이 부르며 “장사도 안 돼 죽겠는데 왜 사진까지 찍고 난리냐”고 응수하신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추한데 왜 사진을 찍느냐고 하신다. 할머니의 노여움을 간신히 누그러뜨리고 남대문을 빠져나왔다.  남대문 시장 아치형 정문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민초들의 삶을 대변해온 ‘대명사’인 이 곳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외국인의 눈에는 생기 있고 신기하게만 보이는 남대문 시장, 그 안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이 있다는 것을 알까.


남대문 시장 정문을 지나,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식당에 들어갔다. 주인은 신문을 보며 혀를 끌끌 찬다. “도대체 공인중개사 문제를 어렵게 내서 정부가 수험생의 응시료만 챙겨먹고, 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뭐 해먹고 살라고 그러는 거야!” 10년째 남대문에서 식당을 경영해 온 박 씨(50세)에게 식당 근황에 대해 물었다.  “에이, 지금은 장사가 영 안 되지. 최근에 일하는 아줌마 3명을 내보낸 판국인데..”하며 속상한 기력을 표시했다. 경기불황도 불황이거니와, 퇴직자들이 너도나도 식당을 개업해 음식업계의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 한다.


그는 “우리 같은 식당이야 불황이겠지만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은 아마 잘 될걸. 그쪽은 경기와는 상관없이 잘 사는 사람들은 계속 그런 곳을 찾으니깐. 우리 같은 사람들만 죽어나는 거지 뭐” 그는 “자고로 대통령은 민생경제를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며 “보수니 진보니 이런 거 보다 중요한 것은 민생을 책임지는 것”라고 흥분을 띠었다.  박 씨는 주한미군 이전으로 국방비가 11%나 증가된다는 신문의 보도를 인용하며 “이 모든 비용이 결국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며 언성을 높인다. 또한 중소기업 해외 이전으로 인해 국내 일자리 창출이 적어질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든든한 배를 채우고 10, 20대의 패션 1번지인 동대문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동대문시장은 밀리오레를 시작으로 프레야타운, 두산타워, 엠폴리스 등 거대도소매업이 위치해 있다.  두산타워를 들어서자마다 예쁜 여성 의류의 디스플레이가 여성들의 빈 지갑을 열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손님들에게 옷 설명을 열심히 하는 상인들, 장사가 잘되는 상인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다른 상인들, 장부를 뒤적이며 계산기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는 상인들, 이곳은 희비가 엇갈리는 곳이었다. 손님이 들지 않아 계속 의류만 만지는 배 씨(65)는 “ IMF 때보다 더 장사가 안 되고 있다. 경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며 “매달 임대료 60만원과 관리비가 지출되어 경기불황에다 순이익은 커녕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한다. 지금은 이미 1억여 원 정도를 투자한 상태라고 철수가 불가능하다고 한숨스레 말한다.


“정부서는 뭐...수출 호황이니 이런 말들을 하지만 정말 서민들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며 “나는 정치적인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정부와 여권에서는 처신을 잘해야 한다”고 조용히 말한다.  아르바이트생을 쓸 수 없는 형편이라 부인과 2교대로 장사를 한다는 그의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했다.


경기불황으로 인해 가격경쟁에 들어선 대형할인마트가 고객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마트에 들어서자마자 ‘최저가격 보상신고’와 ‘품질불량 신고’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입구에서 고객의 출입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최저가격 보상신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마트에서 구입하신 물건들이 다른 매장에서 더 싼 가격에 판매되었을 경우, 소비자가 직접 이마트에 신고를 하시면 5,000원짜리 상품권을 드리는 것”이라며 이마트의 가격 차별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가격경쟁·차별화는 옛말…“손님이 있어야지!!”


이뿐만이 아니다. 품목별로‘초특가전’, ‘난방용품 특별 에누리 10%’, ‘이마트와 함께 하는 TG 삼보컴퓨터 가격 파괴’등의 문구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지만 기대만큼 문전성시를 이루진 않았다. 한 직원은 아마 주말이 아니라 그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매장 내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는‘5년 전 가격으로’라는 타이틀로 음식을 팔고 있었다. 7,400원의 나폴리 스파게티가 5,700원으로 팔리고 있는 것이다. 가격 인하에도 노하우와 전문성으로 젊은이들은 이용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5시 반쯤, 매장에서는 방송으로 떨이 판매를 하고 있었다. “시금치 3단에 1,000원!”이라는 방송에 벌떼같이 몰려드는 주부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한다.


“그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려면 그 나라의 택시부터 타보라”는 말이 떠올라 지나가는 택시를 한 대 세웠다. 구두로 하루 종일 돌아다닌 발을 위한 마음이 더 컸다.  운전기사는 “목적지까지 5,000원이 나오지만 길이 막힐 경우에는 더 추가될 수 있다”며 상세하게 얘기를 한다. 이런 경기침체에 요금을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으면 손님과 싸움이 붙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회사에서 퇴직한 후 2년째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김씨(53세)는 “GNP 2만 달러시대로 간다해도 국민들의 체감지수가 중요하다. 내가 느끼기에는 현재 1인당 GNP 6천 달러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국가나 정부에서 말하고 있는 경제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수출만을 고려했을 경우다”며 내수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경제해석에 대해 속상해 했다.


경기침체시 택시 이용객들은 줄고 버스 이용객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운전기사는 이미 익숙해진 것 같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진 자들의 기분을 맞춰서 투자도 좀 이루어지고 자금도 돌고..그렇게 경제가 회생되어야 하지 않나”는 말을 남기며 현 정권의 안타까움을 실었다.


정부의 말속에서도, 국회의원들 말속에서도, 그리고 언론의 지면을 통해서도, 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국민경제를 논할 때는 항상 온갖 헤아리기 힘든 각종 경기지표로 설명을 하나, 어려워진 경제현실을 맞아들이는 국민들은 답답할 뿐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표어 속에 우리의 자본시장이 압력을 받고 있다 한다.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슬로건 속에 기업의 이익이 나면 주주들의 높은 배당으로 돌아가고, 이는 기업투자의 저조로 이어진다 한다.  이와 동시에 생산기지 해외화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되면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증가는 명약관화한 일이 되어버린다. 이로 인한 소득 양극화는 피해갈 수 없는 일들이고 서민들의 고민은 더욱 더 늘어만 간다.  장사가 제대로 안 되어 자신의 삶의 모습조차 부끄럽게 여기는 남대문 시장의 한 상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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